기록

1. 얼마전에 페르시안 나이트 행사에 다녀왔다.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이란인인데, 오지랖이 넓은 녀석이라 이란 학생회장같은 걸 하고 있어서 가줘야 했다. 이란 시 낭송, 벨리댄스, 전통악기 연주를 보고 왔다. 사실은 거의 중고등학교(어쩌면 더 못한) 장기자랑 수준인데 이란 학생들은 아무도 부끄러워 하지도, 주눅들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신나게 즐기고 있더라. 발표회가 끝나고 이란 음식을 먹었는데 맛나!! 치킨도 맛나고 난도 맛나고 특히 나 콩넣은 커리 너무 좋아!!

2. 저 이란인 친구가 얼마전에 하와이의 학회에 다녀왔는데, 무슨 저주받은 돌이 있다 그래서 기념품으로 갖다달랬더니 가져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유명한 화산이 있는데, 거기서 돌을 주워오면 화산의 여신이 자기의 일부분을 가져간다고 저주를 내린단다. 자기가 그 돌을 주웠더니 현지인이 기겁을 하고 얼른 버리라고 했단다. 응? 진짜? 그래서 내가 저주받는게 너냐 나냐 물어봤더니 자긴데 자기는 하나뿐인 신(알라! 무슬람임)을 믿기 때문에 괜찮단다.

3. 우리집 강아지는 카발리에 킹 찰스 스페니얼이다. 코카 스패니얼이 몇대 지랄견 중 하나라는데 얘도 스패니얼이라 그런지 지랄견의 기운이 보인다. 장난꾸러기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얼마 전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1층에서 파티를 하고, 2층에 개를 올려다 놨다. 얘는 무서워서 계단을 못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안껴주니까 두려움을 극복하고 1층으로 뛰어내려왔다. 그렇게 단번에 계단 내려오기를 마스터하신 이후로는 1층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밥먹을 때마다 옆에서 낑낑거리고, 냉장고 열때마다 귀신같이 온다. 그래도 내가 1층 소파에 앉아있을 때 계단 난간 사이로 목을 내밀고 나를 내려다보는 게 귀여워.

4. 국제구호기구에 한 군데 더 원서를 냈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규모가 있는 곳으로. 그러나 나는 고령이라 합격여부는 글쎄.. 게다가 기업들은 쓸데없는 고학력은 싫어한다는데, NGO는 좀 다를려나..

5. 이곳의 날씨는 천국이다. 한국에서 가장 나들이하기 좋은 청명하고, 시원하고, 습하지않고 그런 날씨를 상상해보라. 여기는 일년중 300일 이상이 그런 날씨이다. 반대급부는 한달 150만원의 집세.

6. 오늘 교수님이 내 수업 참관하러 들어왔다. 세학기만에 나는 능구렁이가 되어서 긴장하지도 떨지도 않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수업을 리드한다. 사람은 어떻게든 다 살기 마련인가봐요.

7. 배고파. 오피스메이트랑 같이 있는데 계속 꼬르륵거린다. 아구 부끄러워라.

8. 생일. 똑같다. 스무명도 넘는 사람이 왔고, 고기를 구웠고, 서빙하기 바빴고, 생일주먹고 죽었다. 나는 딱히 외향적인 사람이 아닌데 꼭 불러야 할 사람이 서른 가까이 되는가. 어디든 출마나 해야겠다.

9. 막내는 재수끝에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새벽에나 집에 온다고 부모님이 화가 잔뜩 나 있다. 여기 오빠들한테 얘기하니까 새내기때 뭐 게임방에서 밤새고, 술먹고 밤새고 새벽에 들어오는건 남자애들한테 일반적인 일이라고 하던데.. 내 기준에선 그게 보통이라도 부모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면 안해야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일단 부모님 집이고, 부모님 돈으로 살고 있으니까, 행동에 제약을 둘 권리도 부모님께 어느정도 있지 않을까?

10. 스승의 날 선물 매년 챙기는 것도 힘들다. 하다 안할 수도 없고. 돈도 꽤 든다.

by Alice | 2012/05/18 03:44 | 트랙백

슬퍼졌다.

내일 아이들과 토론할 자료는 프리모 레비의 The drowned and the saved.. 우리말로 번역하면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쯤 되려나..

홀로코스트의 한복판에 있었던 학자의 에세이인데, 아아 인간성의 끝을 보는 일은 힘들구나.

그 지옥에서 생존한 작가가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도 슬프다.

작가는 생존자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몇가지 설명해놓았다. 자살은 인간의 행위라, 짐승의 상태로 견뎌내야 했던 그들에게는 사치였다고 한다. 게다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뇌하지 않고 그냥 현실을 견딘다.

그 지옥을 빠져나오고도, 자신만의 지옥에 갇혀 목숨을 끊은 작가..

그는 말한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죽어버렸다고, 견디지 못하고, 또는 저항하다가..

살아남은 자들은 잔인하며 교활하고 무감할 수 있었던 이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지옥에서는..

허허.. 나의 염세주의를 한껏 부추기는 밤이로다.

by Alice | 2012/05/17 16:48 | 트랙백 | 덧글(3)

기록


1. 혼자 지내는 요즘, 요리를 못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나의 주식은 샐러드. 육식주의자인 나를 아는 이들은 놀랄거다. 하지만 샐러드래도 모짜렐라 치즈와 달걀(그나마 칼로리를 줄여보겠다고 흰자만 넣는 발버둥), 토마토를 넣어서 드레싱을 듬뿍 뿌린 비건강식(아마도..)

2. 강아지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장난감 천에 피가 배어나오는 걸 보고 기절할 뻔 했으나, 유치가 빠지고 있는 것뿐이라는 육견 유경험자들의 충고로 진정..

3. 슈라멕 비비를 사보려한다. 집안용으로.. 바르고 잘 수 있대서 혹했다. 나도 그 놈의 '화장안하고 쌩얼인 척' 좀 해보고 싶다. 나는 몸이 차서,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뜨거운 물 샤워를 한바탕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으므로, 화장도 같이 지워야되고, 따라서 집에서 화장한채로 있는 일이 없다. 가끔 술마시러 오는 사람들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들리는 사람들에게 진짜 쌩얼 말고 쌩얼'같은' 얼굴을 보여주고파.

4. 퍼그 너무 귀엽다. 퍼그 분양 홈페이지 보는데 보통 1500-2000불해. 우왕.

5. 아프리카에 간다고 생각하니 물욕이 없어진다. 옷이며, 구두며, 악세서리며 가방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에스닉한 롱스커트는 언제나 가지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도 입기 편할텐데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맘에드는 것 몇개 봤는데 가격이 막 사만오천원 이래. 한국 동대문시장과 지하상가가 그립고나.

6. 공부 쉬기로 했는데 머리속에 막 논문거리들이 떠올라. 심지어 아이디어가 꽤 괜찮은 거 같아. 아이고..

7. 나는 지니, 그러니까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 세가지 이야기하라면 말할 것을 벌써 정해놨다. 완벽한 소원들이다. 이제 신이든 요정이든 나타나주기만..

8. 동네에 브런치 가게가 있는데 거기 프렌치 토스트랑 해시 브라운이 예술이다. 하지만 칼로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참고 있어. ㅠㅠ

9. 수면욕을 빼고는 소멸되었던 나의 모든 욕구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드디어 탈박제인가.

10. 내 주위에 보면 철저한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계몽주의자다. 하나도 빠짐없이 엘리트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타고난 반골인 나는 그런 것이 보일때마다 같은 진보성향을 가진 그들을 비꼬고 비난해댄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가지고 있는 그런 의식을 숨기기 위해 정치얘기, 사회성토 이야기는 안하려 노력한다.

11. 나는 애정이 넘치는 인간이라 여러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 그래본 적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하지만 사회규범에 대한 의식이 그를 막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신실한 연인이었다.

12. 요즘 들어 몇년 전인가 한달 동안 여행동료였던 이가 보고싶다. 사실은 그 사람과 여행했던 그 곳과, 그 시간이 그리운 것일테다. 그 허름하고 추웠던 숙소와, 그 사람의 작은 기타와, 안주도 없었지만 달게 마셨던 술과, 발에 났던 상처들과, 오지않던 버스와, 함께 몸을 녹였던 모닥불과, 트럭의 짐칸과, 더러운 화장실과 벌레들이.. 모든 것이, 좋았던 것도, 그때는 싫었던 것도 다 그립다. 그 사람은 귀국해서 몇차례 메일을 보내 그 시간이 꿈과 같았다고 했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보니 그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어. 잘살고 있나요. 그 말은 아직 유효한가요.

by Alice | 2012/05/02 15:22 | 트랙백 | 덧글(3)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국어 노래



<동류>

비온 뒤의 도시는 적막하고 어수선하다
길 가의 자리는 누굴 위해 비어있는 것일까
나는 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만 대답이 없네
나처럼 위안이 필요한 이 또 있을까
바람은 멈추었다 또 부는데 나는 문득 누구를 생각하나
하늘은 맑았다 또 어두운데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마음은 뜨거웠다 식고
세상은 때론 너무나 고독해
또 다른 동류가 필요하구나
사랑은 주고 또 받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 그다지 완벽하지 못하니
꿈은 꾸었다 또 깨어지니
우리는 몇번이나 그 꿈을 좇을 기회가 있을까
왜 사랑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희귀하고 비싼 사랑을
구름은 허공에서 미풍에 흩어지고
추억은 아름다울지라도 사라지고 말지 않은가

by Alice | 2012/05/01 13:41 | 트랙백

엄마 미안


엄마와 전화를 했다.

내가 갑자기 공부를 쉰다고 하면 쇼크먹으실까봐, 공부를 잠시 떠나서 딴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찬찬히 하고 있는데, 웬걸, 반색이시다.

그래서 내가 농담조로 박사 딸, 교수 딸 못되면 서운하지 않겠냐고 그랬더니 전혀!!라신다.

그러면서, 엄마아빠는 니가 평범한 가정 이뤄서 행복하게 살면서 빨리 손자손녀 낳아주는 게 제일 바라는 거라고 하신다.

아.. 내 얘기를 한국에서 일하겠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신거다.

니가 들어올 결심만 하면 여기 좋은 선자리가 많단다. 요즘 누구엄마가 주선해서 누구랑 누구랑 선봐서 잘 사귀고 있고, 누가 여자를 구하는데 걔가 얼마나 괜찮고, 누구엄마네 딸이 아들을 낳아서 가서 봤는데 애기가 그렇게 이쁘더라 등등등..

엄마.. 나.. 아..프..리..카..

엄마는 내가 오지 구호활동 타령을 오래해서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다가, 진심인 걸 아시고는 요샛말로 멘붕..

엄마 미안...



그리고 엄마가 알면 속 더 뒤집어질 얘기 하나 더..

알고지내던 모 오빠가 프러포즈를 했다.

나 이 오빠 좋아한다. 아주 착하고, 바르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다.

근데, 문제는, 이 오빠 이제 박사따고 바로 아주 좋은 자리에 임용되어서 한국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거절해야 했는데..

이유는, 1. 나 아프리카 갈거야. 2. 지금 그 오빠랑 사귀면 교수사모자리 노리는 꽃뱀같아 보일거야. 이다.

으하하하.. 게다가..

지금 오케이하면 오빠 나이를 고려할 때, 심각한 상황(이를 테면 결혼)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도 조만간에.

그 오빠는 하루종일 연구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분명 어느 정도의 내조를 원할 거다.

나는 향후 몇년간 아프리카에, 또는 이곳 미국에 있고 싶은데, 저 교수사모자리 오케이하면 나는 한국에 붙들리겠지.

물론 현재로서는 그렇게 권위있다는 저널에 논문을 몇편씩 낸 오빠쪽이 더 훌륭한 학자니까 내가 입닥치고 내조..겠지..

그럼 나는?

아아.. 오빠 미안.. 우리가 같이 공부하던 시절에 사귀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엄마가 원하는 평범한 여자가 될 기회를 뻥 찬거다.


엄마는 내가 평온하길 원할 뿐이다.

그렇게 못사는 건 나의 천성인가보다.




by Alice | 2012/05/01 12:20 | 트랙백 | 덧글(2)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진로에 대한 진지한 생각


나는 세미프로학자이다.
왜 이 공부를 하게 됐어요? 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됐네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다.

내가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내 전공을 좋아했고, 대학와서 좋은 스승님을 만났고, 그분밑에서 석사를 했고, 박사때는 왠지 당연하게 유학을 왔다.

그렇다고 내가 내 전공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것이 직업이 되고부터는 그저 당연스런 의무감에 공부를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가 과연 이 공부를 하면서 평생을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있다.

지적허영심으로 버텨내기에는 이 공부는 외롭고 괴롭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닌데, 벌이도 시원치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재.미.없.다.
전.혀.

나는 평생 하고싶은 일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내 명예욕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해서 학자와 교수의 타이틀을 얻는 게 그 하나요.
구호활동가가 되고싶은 것이 두번째다.

그래서, 지금 이 멍청한 인간은 서른이 된 나이에 과감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자 계획중이다.
내가 구호활동가가 될 용기를 내었어야 될 타이밍에 그를 못했던 것처럼
이번 학기 수료인 내가 박사논문을 쓰게 되면, 소위 교수트랙을 타고 더 이상 다른 것을 하기 힘들다.

나는 그렇게 갇혀서 사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나는 자유로운 사고와 드높은 자존감과 방랑벽으로 사는 인간이었는데
내가 요즘 입버릇처럼 말하듯 나는 박제가 되어버렸다.

내가 다시 돌아와서 몇년 뒤늦은 논문을 쓰고 학계에 안착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후회되지 않도록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해 볼 작정이다.

이상은, 아프리카 아동구호단체에 3년 파견직 지원을 한 오늘의 기록이다.

나는, 지금 기쁘다.

by Alice | 2012/04/30 16:27 | 트랙백 | 덧글(4)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술을 마시는 꿈을 꿨다.
무려 양주에 소주를 말은 폭탄주..

아침에 깨서 대통령꿈을 꿨으니 메가밀리언이라도 사러가야하나라고 생각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꿈은 그런 치졸한 복권과는 상관없는 꿈일거라 생각하고 접었다.

어쨌든 좋은 꿈이었다.

그리고 보니 그 전날은 김제동씨에게 청혼하는 꿈을 꿨다. 으.. 응?

김제동씨에 대해 딱히 호오가 없지만(의견은 있다) 일어나서 트위터로 청혼이라도 해야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꿈의 결말이 결혼해서 둘 다 하던 일 때려치우고 방랑을 떠나는 것이라 특출난 소셜테이너 하나를 은퇴하게 할 수 없어서 관뒀다. 아니 그보다 김제동씨가 내가 청혼한다고 나랑 결혼해주나?

나 정치색은 분명하지만, 투표와 당비 내는 것 빼고는 정치색 드러내지 않고, 열광적인 것 극히 싫어하는 사람인데(e.g.나꼼수 팬덤, 노사모..) 이게 왠..

이상 두서없는 정치색 반영된 꿈얘기였다.

by Alice | 2012/04/24 16:19 | 트랙백

작은 개와 나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소위 '애견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아직도 그렇다.

내 논리로는 개고기를 왜 먹어서는 안되는지 이해가 되지않고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일부 견주들의 무개념 시전도 못마땅했으며
한국에서 우리 앞집에서 개를 키웠는데 앞집 사람들이 싫었으므로 개짖는 소리도 밉살스러웠고
내 주위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대화의 대부분을 내가 관심없는 자신의 동물에 대한 얘기로 채우기 마련이었다.

물론 내가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키우고 싶어서 서른이 다 된 나이까지 졸랐지만 청결의 대명사이신 어머님은 콧등으로도 안들으셨지.

애니웨니,
미국에서 '나'의 집을 가지게 된 나는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내내 생각해왔지만 이번에는 구남친 J가 막았다.
J는 열한살짜리 노견을 키우는 '애견인'인데 그가 반대했던 이유는 내 공부에 방해가 된다거나, 내가 번거롭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나한테 올 동물의 안위를 걱정함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정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나와 3년 가까이 사귄 사람조차 내가 동물에게 애정을 못줄만큼 냉정한 사람이라 생각한거다.
J는 나와 헤어진 후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위스키(그렇다 내 개의 이름은 위스키다) 키우기 힘들면 제발 나한테 보내줘'라고 썼다.
내가 귀찮아지면 개를 어디 정말 내다버리기라도 할 줄 안건가. 허허.

또 애니웨이,
개를 가지게 된 경위는 이렇다.
코스트코를 J와 갔다.
그 얼마전에 소다음료 만드는 기계를 샀는데 J가 그 기계가 혹시 코스트코에서도 파나, 얼마나 하나 보자고 했다.
그래서 평소 안가는 가전용품있는 코너로 갔다.
눈에 룸바 자동청소기가 보였다.
나는 청소기 돌리는 거 되게 싫어한다.
룸바에 꽂혔다.
룸바 샀다.
사고보니까 Pet용이다.
엇. 청소가 해결되었으니 동물을 키워도 될것같다.
그날로 동물을 데려오는 방법을 급 검색했다.
개 분양 싸이트 뒤지다가 눈에 쏙 들어오는 녀석을 발견했다.

이렇게 되면 나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충동과 무절제의 인간이다.

그 다음날로 브리더에게 약속을 잡고 편도 3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새끼강아지들을 보러갔다.
그리고 까불이가 좋다는 J의 의견에 따라 제일 까부는 놈을 택하고 계약금을 내고 돌아왔다. 새끼들을 11주 이후에 분양하는 게 그 브리더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2주동안 그 강아지에게 필요한것(필요하리라 내가 생각한 것)을 엄청나게 질러댔다. 내 한달치 용돈(적지않다)이 날라갔다.
그리고 분양시기가 되자 다시 왕복 여섯시간에 걸쳐 개를 데리고 왔다.

나는 J에게 누누히 얘기했다. 개는 개고, 사람이 아니라고. 개를 사람 대접해줄 수는 없다고.

그런데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길에 내가 운전했다. J는 조수석에서 강아지를 안고있었다. 강아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밖으로 나와본 거고, 차도 처음 타보는 거라 계속 조그만 목소리로 낑낑거렸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프리웨이의 입구를 세번이나 놓쳤다.

불안했던지 첫날 밤에는 강아지가 계속 울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세미나가 있었는데, 강아지는 배 위에 올려놨을 때만 낑낑거리는 걸 멈췄다.

예민한 나는 강아지를 배에 올려 재우며 한숨도 못잤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나와, 이미 훈련이 된 개를 키웠던 J는 두달짜리 강아지를 어떻게 훈련시켜야 되는지 몰랐다. 우리 집은 카페트가 깔린 집인데 이 개가 여기저기 오줌을 싸서 집안은 온통 개의 소변냄새로 가득찼다.

나는 냄새를 없애는 스프레이를 갤런 단위로 뿌려가며 청소를 했다.

좀 크니까 침대로 뛰어 올라왔다. 나는 침대를 병적으로 청결하게 한다. 샤워를 하고, 파자마로 갈아입지 않고는 침대에 걸터앉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 개가 침대를 밟고, 침대에 털을 묻히고, 침대에 실례도 했다.

나는 일주일에 두번씩 이불빨래를 해댔다.

그리고 이 강아지는 자기의 장난감과, 자기의 개껌 등 씹어도 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씹는다. 핸드폰 충전줄, 노트북 충전줄, 헤어드라이어가 잠깐 방심하는 틈에 날라갔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으로 등록하고 초고속으로 배달받아서 대체했지만 쓴 돈은..

그렇다. 이게 내 말썽꾸러기 개가 나에게 한 짓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 개를 사랑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발치에서 자던 개는 비척비척 나에게 와서 입술을 열심히 핥아준다. 그러다가 내 팔을 베고 퍽 쓰러져서는 다시 잠들고, 아침잠이 많은 나도 개에게 한팔을 내주고 같이 잔다.

나갔다가 들어오면 귀가 긴 내 개는 사람들이 자다가 일어나면 머리가 눌리는 것처럼 한쪽 귀가 눌린채 뛰어나와서 반가워서 그 작은 몸을 주체를 못하고 꼬리를 맹렬히 흔들며 왔다갔다 한다. 한참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한 뒤에야 진정이 되어서 내가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씻을 수 있게 떨어져 주는 것이다.

나는 보통 침대에 엎드려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데, 한참 하다보면 개가 눈앞으로 와서 입술을 핥아댄다. 쓰다듬어주면 배를 까고 누워서 팔과 다리를 쭉 뻗는데, 한참 만져줘야 다시 내려가서 내가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다시 쓰다듬 게이지를 올리려 눈 앞을 막아선다. 

나는 이제 처음에는 남사스럽다며 하지않던 '개에게 말걸기', '스스로를 엄마라고 칭하기', '콧소리 내면서 애기한테 쓰는 말투 쓰기'의 트리플 콤보를 달성했다. 

사람들은 다들 놀라지만(이 사람들도 내가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뭐 어떤가 내 특별한 개가 나를 특별히 사랑해서 나를 특별히 행복하게 해주는데..

나는 지금도 내 개의 털에 코를 박고 한껏 행복한 냄새를 맡고 있다. 

 

by Alice | 2012/04/23 16:03 | 트랙백 | 덧글(10)

그런 순간이 있었다


니가 너무 보고팠던 순간이 있었다.

너와 함께 안고있는 것만으로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던 순간이 있었다.

니가 나의 마지막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해 마지않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사라져버렸다.


나는 지금 여기 홀로 외로이, 몸도 마음도 차갑게 굳은채, 누구를 사랑하지도, 원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인간이 되어있다.

by Alice | 2012/04/17 15:04 | 트랙백

외로움

1. 타지에 있어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볼 수 없고, 생경한 언어를 쓰며 살아서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니다. 가족들과 같은 집에서 복작거리며 살고, 유려한 한국어 솜씨를 뽐내며 논문을 쓸때도 나는 외로웠다.

2. 실연을 해서 외로운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 통화를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잃어서 외로워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연인이 있을때도 나의 문제는 오롯이 나의 문제였고, 나를 위해 목숨까지 줄 수 있다던 연인도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내 삶을 살아가고, 생활을 지켜내는 것은 나에게 달렸고 그 힘겨운 하루하루가 나를 외롭게 했다.

3. 내가 힘든 유학생활을 하고 있어서 외롭다고 생각했다. 공부가 어려워서 그렇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되먹지 못한 자신감에 차서 공부가 즐거웠던 시절이나 공부따윈 접어두고 여기저기 즐거이 방랑하던 시절에도 나는 외로웠다. 나는 아직도 남색 하늘의 이름을 가졌던 중국 구석의 한 빈관에 들어않아 이유없이 혼자 울어댔던 일주일을 기억한다.

4. 고로, 나의 결론은 이렇다. 안 외로운 인간은 없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술이, 섹스가, 애정이, 가족이, 종교가, 성취감이 내 이제까지의 외로움을 없앨 수 없었던 것처럼 내가 앞으로 가지려고 하는 학위가, 직업이, 명예가, 안정이, 남편이, 아이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5. 그렇다면 나는 평생 무언가가 결여된 마음을 안고 살아야된다. 죽을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니다.

6. 그러니 세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훌쩍 지나가 어느새 평온히 끝을 기다리는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by Alice | 2012/04/14 15:25 | 트랙백 | 덧글(2)

마성의 바이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받았다.
역쉬 후리한 아메리카에 사니 별일이 다있다.

상대방은 나와 세미나를 한두개 같이 들은 동료인데 예쁘고 스타일이 좋아서 눈여겨보고(순수한 뜻으로) 있었던 애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 게

피부도 좋고
머리는 얇은 드레드로 뭉쳐서 하나로 묶었고
히피 스타일의 옷들을 멋지게 소화하며
같은 스타일의 액세서리들을 감각적으로 매치하고
키크고 늘씬하고
공부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그런데 여자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성적인 대상으로 삼지는 않아서 정중히 거절..
하지만 그 애는 정말 너무너무 멋있는 사람이라서 하루종일 두근거렸다.
그리고 혼자 나는 먹히나봐라며 자뻑 중..

크하하 나는 마성의 바이가 될 수도 있겠구만 ㅋㅋ

by Alice | 2012/04/12 15:19 | 트랙백

무엇이 잘못된 걸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거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깊고깊은 비밀이 세가지 정도 있다.

정말 비밀이라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누구에게서도 이해를, 위안을 얻지 못한다.

그 비밀들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고, 망가뜨려가고 있는 걸까

정말 그것 때문일까

나의 일상적인 위화감은 내가 그 비밀들을 드러내놓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정말 내 자신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걸까

그렇다고 한들, 내려놓지도 못할 짐인데 평생 이렇게 살아야되나


by Alice | 2012/03/08 15:14 | 트랙백 | 덧글(1)

My deep deep secret, my deep deep sorrow


당신이 과한 강도로 내 손목을 낚아챘을 때,
당신이 내 얼굴을 쥐고 제대로 봐!라고 외쳤을 때
당신이 수많은 샷을 비우고 비우고 비웠을 때
당신이 내 얼굴 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어대며 화가나서 소리를 질렀을 때
당신이 결국 You, fucking 으로 시작되는 욕설을 퍼부었을 때

내가 그냥 자리를 피해버렸을 때
내가 눈을 내리깔고 당신과 눈을 맞추지 않았을 때
내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당신을 무시했을 때
내가 그딴거 알고 싶지 않다며 당신의 말을 잘랐을 때
내가 늦었으니 이제 그만, 이라며 우아하게 코트와 백을 챙겨들고 나섰을 때

나는 냉정했지요
아니
나는 좋았지요
나는 짜릿했어요

더 사납게 날뛰어 주세요


by Alice | 2011/12/11 19:29 | 트랙백

술에 대한 기록


나는 나름 애주가이다. 일주일에 한두차례는 꼭 창대하게 끝나게 되는 술자리가 있고, 한두차례는 그냥 가볍게 마시는 술자리가 있다.

어제는 친우 G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G는 한국인, 외국인 두 그룹으로 생일파티를 두번하는데 어제는 외국인그룹 파티..

원래 이 그룹은 술을 그다지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홀연히 나타난 브라질 청년 D가 들고온 건 브라질의 럼주..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카차카? 캄차카? 

라임 여섯 조각에 설탕을 넣고 으깬다음 부순 얼음과 럼주를 넣어서 제조는 계속되었다. 

달달하고 상큼하고 해서 한잔 두잔 마시다가 럼주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나중에는 라임도 귀찮고 해서 잔에 계속 럼주만 부어마시는 사태가.. 망했다.

그리고는 괜히 프랑스 청년 M과 '프랑스인의 정조관념'이라는 쓸데없는 주제로 술김에 논쟁이 붙어서는 다른 사람들이 간 후에도 럼주 샷을 원샷해가며 칼라브루니니 뭐니 말도안되는 주제로 말싸움..

문제는 오늘 아침 여덟시부터 내가 담당하는 학생들 기말고사가 있었다는 것..

씻지도 않은 얼굴에 비비크림을 처바르고, 술먹은 다음날의 나의 베프 시카고 화이트삭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시험장으로 출동...

아마 가는 동안 경찰이 불러세웠으면 백퍼센트 음주운전으로 걸렸을거다. 제 정신이 아닌 와중에 타이레놀을 몇알 밀어넣고 거의기어가다시피 시험장에 도착했다.

나의 초라한 행색은 감기때문인걸로 변명하려고 했는데, 아뿔싸! 어제 파티한거 페이스북에 올라와서 학생들이 안다.

다들 유나 행오버? ㅋㅋㅋㅋ 이러고 있다. 이 자식들이 마지막까지 벼락치기나 하지..

게다가! 내가 잊고 있었던 게 있으니, 기말고사는 세시간짜리 시험이라는거.. 젠장!!

그 시험은 큰 홀에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TA의 학생들도 같이 치는 거라서 감독은 동료들에게 맡겨놓고 맨 뒷자리에서 퍼져 괴로워하며 '내가 한번만 더 술 이렇게 마시면 개다'라는, 그 말대로 됐으면 벌써 개가 되도 천번을 됐을만한 멘트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시험감독 중에 토하는 사고 없이 무사히 완료..

몇몇 애들이 시험지 제출하고 나가면서 고맙다고 하면서 안아줬는데 나름 감동이었다. 첫 학생들이고 정도 많이 들어서..

내가 애들이랑 껴안고 있으니까 동료 J가 유나,  don't  cry~~하면서 놀려댔다.

이제 정말 아이들과 바바이다. 어흑..

어제와 오늘 음주의 기록이었다.

by Alice | 2011/12/10 09:14 | 트랙백

기록

1. 내 석사 논문심사 주심을 하셨던 선생님이 어제 마지막 강의를 하시고 은퇴하셨다. 나와는 몇차례 얼굴 붉힌 일이 있기도 한 분인데 역시 아무느낌 없다. 나쁜 분은 아닌데 우린 그냥 잘 안맞았다. 우리 선생님이 은퇴하시면 눈물이 날라나.

2. 블랙 프라이데이에 산 물건들

어그-단추가 옆에달린 숏과 클래식 톨, 빨간색 어그를 하나 사고팠는데 어디에도 안판다.
르쿠르제 냄비-찌개용과 전골용, 그리고 둘이 알밥이나 계란찜 해먹을 작은 냄비?뚝배기? 그런거 두개. 색깔은 빨강 오렌지 노랑색
캘빈클라인-J의 가방, 머플러, 속옷
폴로-J의 스웨터, 크리스마스 포푸리, J벨트
월드마켓-크리스마스 장식 양말과 'no peeping'이라고 쓰여진 크리스마스 선물 택들, 선물 리본들
배드배스앤비욘드-소다수 만드는 기계랑 소다원액 몇가지
핍스애비뉴-치 헤어에센스 하나
크록스-J신발
아메리칸 이글-7개에 25불 세일하던 속옷 14개
길트-마크바이마크제이콥스 가운

Bose 헤드폰은 세일 안해서 못샀고, 살찌니 딱히 옷도 사고싶지 않아서 건너뛰었다. 아.. 아마존에서 삼겹살 구울때 쓸 전기그릴도 하나 샀다.

3. 이번 주말도 모임의 연속, S네 집에서 디스코파티ㅋㅋ, G의 생일파티(G의 외국인친구 한국인친구 두번 하는데 나는 두 그룹에 다 속해있으니 둘다 감), S교수님네 바베큐

4. 오늘이 내 수업 마지막날. 속이 다 시원하다 이 말썽꾸러기 꼬꼬마들아.

5. 페이퍼의 압박. 헉헉헉 나죽소.

6. 수업들어가야 되어서 쓸 얘기는 많지만 그만~~
4.

by Alice | 2011/11/30 04:42 | 트랙백

근래의 기록-다국적 그룹의 일상과 연말일기

1. 매주 목요일 점심은 정기적으로 T, A, G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여자들이 팟럭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고착이 되었다. 나만 싱글이라 난 보통 디저트를 사가고 나머지 여인네들은 각자의 국적에 따라 이탈리아식, 멕시코식, 한국식의 음식들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긴 수다.. 다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여자의 수다본능은 모든 걸 앞선다.

2. 그리고 이 그룹은 '전통적인 미국식 땡스기빙 만찬'을 준비중이다. 나야 요리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없으므로 뭐든 오케이다. 그래서 목요일 아침부터 모여서 칠면조, 그레이비, 크랜베리 소스, 버터롤,  두가지 종류의 파이, 그린빈, 매쉬 포테이토 등등등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내일 아침부터 장보러 나간다. ㅋㅋ 외국인들이 만드는 전통 미국식이라.. 남편이 미국인인 T는 필요하면 시어머니에게 전화라도 하겠다고 비장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3. T와 남편은 이번 여름 이곳에서 결혼식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인인 T는 자기 고향에서 내년 여름, 또 한번의 결혼식을 할 예정이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T의 집안은 지방 유지쯤 되는 모양이다. 바닷가에 별장도 있고 해서 비행기표만 우리가 사서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나머지는 아무 걱정 하지말라고 한다. 8년 전에 여행한 이탈리아는 멋진 곳이었고, 전통적인 이탈리안 웨딩을 볼 기회도 흔치 않은데다가, T는 무척 소중한 친구이므로 내년 여름은 이탈리아에 갈 것 같다.

4. 일정상 우리가 모여서 만들어 먹는 땡스기빙디너에 못오게 된 S와 J커플은 그 울분을 참다 못해 자기들이 제 2차 땡스기빙 디너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이쪽이 미국인들이니 '정통'땡스기빙디너 되시겠다. J는 영화평론가라 언제나 이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옛날 영화를 보면서 디저트를 먹는다. 이 집 파티도 재밌다. 기대된다.

5. 땡스기빙 시즌에는 일년 중 가장 큰 세일인 Black Friday sale이 있다. 보통 밤 12시 정각부터 세일이 시작돼서 새벽내내 사람들이 쇼핑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올해 나의 목표는 내 낡은 어그들을 대체할 새로운 어그와 르쿠르제 냄비, Bose 헤드폰(J 생일 선물로 사줬는데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J의 양말에 넣을 자잘한 선물들이다.

6. 그렇다! 이번해에 J와 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 양말을 두 개 사서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거기 각자 서로를 위한 자잘한 선물들을 채워넣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풀어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것은
Gummy bear(젤리곰. J가 좋아한다)
작은 병의 레모네이드(내가 집에서 음료수 못먹게 하는데 완전 달콤한 음료수 매니아다)
작은 레고세트(어릴 때 가지고 놀던 레고 얘기를 자주한다.)
내 빈탄에서 찍은 비키니 사진(예쁘게 나왔다고 언제나 가지고 싶어했는데 민망해서 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카드
벨트(지금꺼는 너무 낡았다)
약간 도톰한 스카프(스카프 하나밖에 없다)
이 정도다. 크리스마스 양말은 꽤나 커서 이걸로 다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계속 고민해야하는 게 이 크리스마스 양말의 묘미.


우리 다국적 그룹 사진 하나 추가. J네 집 할로윈 파티. 다들 공포영화에 열중해있는 도중. 이 블로그 방문객 중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길 바라며..

by Alice | 2011/11/23 07:56 | 트랙백

이러지 마세요. 나는 시시덕시시덕 지분지분거릴 수 없답니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지만 한국에 있다.
그래서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떡하니 끼고있음에도 종종 싱글로 오해를 받는 것 같다.

지난 할로윈 이야기다.
할로윈은 월요일이었다. 파티스쿨답게 금요일부터 흥청망청인 분위기라 주말 내내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그리고 막상 할로윈 당일 월요일에는 한달 전부터 초대받았던 이란인 친구의 생일파티만 가고 집에서 애들 사탕이나 줄 생각이었다. 다음날 내가 가르치는 클래스들이 있어서 격하게 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생일파티 자리가 파하고 나자, 뭔가 좀 아쉬웠다. 코스튬도 차려입었고, 기분도 들떠있었다.
그래서 친우 G커플과 나 이렇게 셋이 그냥 다운타운의 우리가 좋아하는 바에 마가리타나 한잔 하러 가려고 했다.
그래서 차로 향하는데 아까 생일파티에서 만났던 mad hatter(분장을 한 청년)가 옆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뭐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누다 그 청년도 합류해서 넷이 신나게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원래 우리가 자주가는 바는 그냥 캐주얼한 바인데 12시 이후에는 춤추는 곳으로 변한다. 그날은 시간이 늦지도 않았는데 할로윈이라 일찌감치 춤판이 벌어져 있었고 우리는 술을 한잔씩 걸치고 춤을 추러 나갔다.

난 원래 그냥 제 흥에 겨워서 노는 애다. 남자 만나려는 목적도 없고 춤도 막춤이다.
그날도 G와 둘이 흥겹게 코리안 막춤 팔종세트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거 느낌이 이상하다. 아까 우리랑 합류한 그 청년이 나한테 부비부비를 시도. 그냥 같이 춤추는 건 할 수 있는데 느낌이 왠지 이상해서 흥이 다 깨져 자리로 돌아와 사람들 코스튬 구경하면서 술만 홀짝거렸다.

아 근데 얘 계속 따라와.
내가 가서 저 이쁜 아가씨들 좀 엮어보라고 하니까 왜 자꾸 자기를 push하냔다.
그리고는 결국 Are you seeing someone? 하....
남자친구 있어? 어디에? 한국에. 심각한 거 아니면 우리 데이트해도 괜찮잖아. 노땡큐.
짜증나. 재밌게 놀지도 못하고 걔만 피해다녔다.

그리고 또 요즘!
우리과에 청년 하나가 눈치가 심상치않다.
내 모자가 이쁘다고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지 않나, 무슨 말을 하면서 자꾸 어깨에 손을 대지 않나.
정말 스쳐가는듯 찰나의 행동이지만 느낌이 이상해.

나 얘랑 사이 어색해지기 싫다.
할로윈의 그 청년은 친한 사이도 아니고 파티에서 통성명만 한 사이라 안보면 그만이지만 얘는 동료고, 평생 볼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반지낀 손을 자꾸 흔들어대고,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 얘기를 맥락에도 안맞게 여기저기 끼어넣고, 페이스북에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표시를 잔뜩 해놨는데도 그런다.

내가 오해하는 걸까봐, 혹시 그런 행동이 미국애들한테는 아무렇지도 않은걸까봐 딴 미국여자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걔들도 그건 이상하단다.
아 놔... 나 걔한테 정색하기 싫은데. ㅠㅠ 나 남한테 싫은소리 정말 못하는데..

내 딱히 고상하고 우아하여 남자들이랑 이래저래 관계가 싫은건 아닌데, 어짜피 난 지금 시장에 나와있는 물건이 아니고, 그러면 결국은 어색해질 뿐이고..
악!! 하지마하지마!! 좀!!

by Alice | 2011/11/09 12:35 | 트랙백

He is coming!

그가 온다.
고작 2개월 떨어져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가 있는 상태에 익숙해져서 그 전보다 더욱 외롭고 더욱 나약하다.

3개월짜리 티켓을 끊었다고 했다. 3개월동안 그의 장래는 결정된다. 어딘가 붙을것인가 어디에 붙을것인가.

나는 자존심을 굽히기로 마음먹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학교 동료나 선생님들에게 하는 것은 매우 마땅찮은 일이지만 미국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하기에 커미티의 교수들과 J의 지도교수가 될 사람에게 가서 이런저런 개인사를 늘어놓고 내 약혼자를(실제로는 약혼했다고 할 수 없음)붙여달라고 읍소할 생각이다.

J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동네 인문계 대학원에 붙고 안붙고는 정말 복불복. 합격의 이유도 불합격의 이유도 명확치않다.
이런 상황에서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뭐든 동원해봐야한다.

우리학교 우리과는 지난 국가조사에서 전미 6위에 랭크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명의 학교.
하여, J가 혹시 아이비리그의 이름만으로 빵빵터지는 학교에 붙어서 거기에 가고싶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정했다. 내가 마음을 정한다는 것은 J도 마음을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착한 J는 언제나 내 의견을 존중한다.

너는 나와 함께, 여기 나의 친구들과, 나의 집에서, 나의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아야해.

어떻게든 너를 우리학교에 꽂을 것이고, 우리는 같이 살고 같이 공부할거야.

우리는 쬐매난 커플이 되어서 주말마다 친구들과 바베큐를 하고 캠핑을 가고 박물관들을 돌아다니고, 집에는 두개의 책상을 나란히 놓고 수면양말을 나란히 신은채 공부할거야.

행복할거야.

by Alice | 2011/11/08 07:26 | 트랙백

웃게 해줘서 고마워.

나는 화요일에 10시, 12시, 4시 세 클래스를 가르친다. 세계사 토론수업이다. 일단 토론수업이니만큼 클래스의 분위기가 토론의, 그러니까 전체 학업성취에 큰 영향을 미친다.

10시 클래스는 다들 수줍다. 이런 경우가 제일 힘들다. 다들 성실하기는 한데 입도 잘 떼지않고 웃고만 앉아있는다. 12시 클래스는 뭐랄까.. 잘 자란 미국 아이들의 전형같다. 조그만 핸드아웃을 건네줘도 일일히 고맙다고 인사하고, 질문이나 토론할 때의 말투도 어찌나 정중한지. 외모도 남자애들은 깨끗하게 커트된 머리에 셔츠를 입은 애들이 많고, 여자애들은 우아하게 컬이 들어간 금발아가씨들이 많다.

문제는 4시 클래스다. 원래 내가 가장 어려워한 클래스가 이 클래스이다. 원래 이 과목은 저학년생 대상 클래스인데 막판에야 학점 채우러 들어온 타전공 학생들이 많아서 다들 너의 수작은 내가 다 꿰고있지라는 표정으로 시니컬하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애들이었다. 게다가 4시? 나도 지치고 아이들도 지치는 시간이다. 내가 이전에 썼던 'smoking pot'사건도 이 클래스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얘들이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더니 서로 친해지고 말이 많아지고 따라서 토론이 활발해지고 그리하여 내 가장 총애하는 클래스가 되었다. 애들 토론 수준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거고 어쨌든 이 클래스는 유쾌해서 좋다.

오늘은 내가 들어가서 아이들을 겁을 줬다. 원래 이 클래스는 내가 진행하는 토론섹션과 함께 월수금 8시에 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야하는데 500명되는 대형강의라 출석을 체크할 길이 없다.

그러다보니 그냥 안오는 애들도 많고 배운게 없으니 토론에 지장도 있고 해서 '내일부터 강의에서 내가 랜덤으로 니네 중 몇명 출석체크 할거다!!' 라고 협박했다.

아이들 왈 '안될걸'
그렇다. 씨도 안먹힌다.
오백명 강의인데 내가 어떻게 내 학생들을 찾아내겠는가. 똘똘한 놈들.

그래서 다시 겁줬다.
'그럼 너네 이제부터 강의에 내가 무슨 옷 입고오는지 기억해놔. 내 옷 기억하는지로 체크해서 강의 출석 확인할거야.'
역시 '안될걸'
걔들도 안다. 매번 뭔가를 잊어버리고 와서 오피스로 달려가는 내가 내가 입었던 옷따위를 기억 못한다는 것을..

말문이 막힌 내가 'you.. you..'만 반복하고 있는데 4학년짜리 꼬꼬마(자기는 다 컸다고 생각하는) 내 등을 두드리면서 진정하란다. '어쨌든 안될거야' 그리고 다들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구동성으로 강의 안빠지겠다고 약속한다.

하하하 선생으로의 위엄은 개나줘.
어이가 없이 헛웃음을 웃다가 내 입에서 나온 유치한 영어는?
'I hate you! all of you!'
그러면 걔들은 
'We love you~~' 

하긴, 얘들이 나한테 hatshepsut나 xerxes같은 고유명사 발음을 가르쳐주거나, environmental circumscription 같은 용어를 여러번 반복하다가 혀가 꼬일때 즐거워하거나, cane과 staff의 차이에 대해 모션과 그림으로 설명하는걸 관망하거나 그럴 때 이미 위엄은 개가 가져갔는지도.

어쨌든 나의 총애하는 학생 겸 영어선생들이 오늘도 나를 웃겼다.

by Alice | 2011/11/02 13:43 | 트랙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일상

1. 나의 세 클래스는 무사히 돌아간다. 막내동생 나이의 아이들은 의외로 예의바르고 이쁘다. 아무리 미국아이들이라도 다 똑같고 귀엽다.

2. J의 생일선물로 노이즈캔서링 기능이 있는 고가의 헤드폰을 부쳤다. 나는 선물하는 것을 좋아한다.

3. costco에서 로알드달의 문고판 전집을 파는걸 발견하고 고민도 없이 홀랑 사버렸다. 후회는 없다.  

4. 동료들은 참 친절하다. 어떻게 보면 좀 지나치게. 걔들은 누구에게나 다 그럴까 아님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걸까, 그것도 아님 어려서(정확히는 어려보여서), 아님 여자라서?

5. 내일 저녁에는 파티에 갔다가 학교 홀에 록키호러픽처쇼를 보러갈거다. 할로윈 코스튬도 입고 춤도 출거다. 터치터치터치터치미 아이워너비더리.

6. 내일 모레는 저녁초대.

7. 글피는 다시 코스튬입고 다운타운 클럽.

8. 할로윈 당일은 집에 있으면서 애들 사탕이나 줘야지.

by Alice | 2011/10/28 14:50 | 트랙백

기록

1. 큰아버지의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경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한다. 개천에서 용난 아빠를 둔 나와는 달리 J의 집안은 나름 뿌리있는 명문가(?)여서 J의 의사 친척들 덕분에 수술날짜도 땡기고 이래저래 병원에 이야기를 넣을 수 있었다. J는 자기일인듯이 여기저기 말해놓느라 분주하지만 배은망덕, 자격지심, 열등감의 결정체인 우리 큰집 식구들이 정말 고마워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분명 삐죽삐죽거리겠지.

2. 큰아버지의 수술때문에 그 자식들, 그러니까 나의 사촌들이 대거 서울로 와서 병간호를 하고 있단다. 근데 우리집의 장손이자 큰아버지의 외아들인 사촌동생은 가진건 개뿔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는 소시민(혹은 우리 친가)의 전형적인 인물이라 자기아버지가 오늘내일하는 와중에서도 2년안에 몇억을 벌어서 골프를 치고 다닐거라느니 어쩌느니 큰소리만 뻥뻥 치고있는 모양이다. 골프를 치던가 말던가 그냥 내눈앞에 안나타나면 땡큐다.

3. 내 동네는 할로윈파티를 크게 한다. 애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다들 차려입고 즐긴다. 이번 해에는 메이드복을 입기로 했다. J랑 한국싸이트들을 뒤졌는데 진짜 이런거 입는 애들이 있구나. 꽤나 파는 곳이 많아서 놀랐다. 어쨌든 이번 해는 나와 G, T, A가 사람들 초대해서 파티를 하기로 했다.

4. T네 집에서 파티를 했다. T는 미국인이랑 결혼한 이탈리아인이다. 어떻게 같이 노는 그룹이 형성되었는데 미술사 박사과정인 중국계 미국인 S와 영화 평론가 그의 남편 J, T와 역시 미술사 박사과정인 남편 T, 컴퓨터공학 전공인 멕시코인 M과 그 아내 A, 내 친우 B와 G 커플, 유일한 솔로인 나와 S오빠 이렇게.. 저번 파티에는 방년 19세의 꽃청년 L도 왔다. 컴퓨터공학하는 이란인들 둘도.. L은 내가 여기서 본 서양인중에 제일 잘생긴 거 같다. 하지만 애기는 애기다. 은근 공통점이 없는 것 같아도 이 그룹은 만나면 즐겁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그룹에서 한국인은 더 이상 소수민족이 아니라는 것.. 미국인은 셋뿐이고, 멕시코인 둘, 이탈리아인 둘, 이란인 둘. 그리고 한국인은 넷이다. 비바 코리아.

5. 요번주의 farmer's market에서는 맘에 드는 꽃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냥 빨간 달리아를 사왔다. 달리아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가 아니지만 매주 싱싱한 달리아를 가져와서 파는 달리아 청년이 있다. 보통 수국도 같이 파는데 오늘은 분홍색 수국이라 별로 맘에 안들어서 달리아를 사봤다. 싸다. 3달러에 곁들이는 연두색 안개꽃 비슷한 것까지 하니 4달러. 누가 라넌큘러스도 좀 팔아줬으면 좋겠다. 

6. 현관문 바로옆에 향수선반을 설치했다. 매일 잊어버리고 안뿌리고 나가서 문을 나서다가 보이면 뿌리겠지 싶어서. J가 없이 혼자 달았더니 좀 비스듬하게 달렸다. 

7. 내 소파에 서식하던 Y오빠는 장기 여행을 갔다. 그래서 집을 온전히 차지했는데 소파에서 홀애비 냄새가 난다. 내 소파는 아이키아 천소파인데 그 천 커버가 세탁이 안되는 거다. 페브리즈 한통을 다 뿌렸는데도 소파에 누워있으면 냄새가 난다. 아아 ㅠㅠ 다음 세일때는 아이키아 소파커버를 새로 장만해야겠다.

   

by Alice | 2011/10/10 13:21 | 트랙백

기록

1. 작은아버지에 이어 이번에는 큰아버지가 암이라는 소식. 그것도 경과가 좋지않은 암이란다. 대구에서는 수술을 못한다고 해서 현대아산병원으로 올라오셨다. 몇번 언급했듯이 나는 친가쪽 친척들을 좋아하지 않고, 특히 큰아버지 집안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무정하고 냉정한 인간이라 조금의 안된 마음은 있지만 큰아버지의 투병에 따른 여러가지 뒷일들이 더욱 신경쓰인다. 

2. 그래서 말인데, 친척이란 나에게 별 의미가 없는 듯. 핏줄로 이어져있다는 건 그냥 허상이 아닐까. 내 식구들이야 핏줄에다가 수십년간 서로 부대끼며 키워온 애정이 있지만, 멀리 떨어진 친척들에게는 난 아무런 결속감도 느낄 수 없다. 차라리 만난지 일년된 여기 지인들이 더 애틋하다.

3. 또 그래서 말인데, 내가 개똥만큼도 의미를 두지않는 내 핏줄은 나에게 3대 질병-심장, 당뇨, 암-의 가족력을 선사해주셨다. 농담으로 땅이라도 좀 주고 가족력도 물려주지라고 얘기하면서 웃었다.

4. 첫 TA 수업을 했다. 내 막내동생 정도의 애들이 올망졸망 앉아서.. 말을 말자. 그냥 한 무리의 원숭이들을 몰고가는 느낌. 토론 수업이라 다들 입을 좀 떼게할 필요가 있어서 자기소개를 하면서 이름, 전공, 좋아하는 것을 간단히 얘기하라고 했더니 어느 여자애는 'smoking pot'이라고 한다. 하하하. 돈벌기 힘들구나. 

5. 너무 피곤하다. 하루종일 졸리고 무기력하다. 

6. J가 보고싶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비행기표를 검색해보고, 얼마전에 다녀온 인디고펄을 못잊어 계속 엑스피디아를 뒤진다. 아.. 당신과 한나절만 가만히 안고있을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소원이 없겠어. 

7. G는 나랑 여기서 제일 친한 친구이지만 입장은 다르다. 나는 유학생, G는 유학생 와이프. 얼마전에 아침일찍 뭐 좀 빌릴 것이 있어서 G의 집에 갔다가 B오빠(G의 남편)은 자는데 G는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만들고 있는 걸 보고는 조금 쇼크를 받았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G가 B오빠 아침에 샤워하는 동안 속옷을 꺼내서 침대위에 놓아준다는 소리를 듣고 또 쇼크.

이유는 1. 우리의 입장차를 확실히 느끼게 되어서. 우리는 찰떡같이 붙어다녀서 G는 내 동료는 아니라는 걸 자꾸 잊는다. 2. 내가 J한테 해주는 것이 너무 없나 싶어서. 물론 J가 그런 소소한 뒷바라지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나를 챙기는 편이지만 어쨌든 조금 미안했다. 3. 나도 B오빠랑 똑같이 공부하는 사람인데(게다가 나는 박사과정! 오빠는 석사!) 나는 왜 누가 아침도 해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안그러나 싶어서.

8. pot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음과 그걸 피우는 것 중 뭐가 더 건강에 나쁠까.

by Alice | 2011/09/29 16:02 | 트랙백 | 덧글(3)

나이스한 인간이 되기는 어렵다.


나는 방학동안 미국집을 비웠다. 약 3개월 간이었다. 그 동안에도 천이백불에 육박하는 집세는 다달이 나갔고, 돈도 아깝고 해서 잠깐의 주거가 필요했던 지인들에게 집을 쓰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여름방학에는 사람들이 대거 이사를 하는 시기인데, 새집과 이전집의 계약기간이 맞물리지 않을 경우 며칠 묵을 곳이 많이들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G커플, 이탈리아 친구 T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온 T의 하객들, H오빠, S오빠, Y오빠의 세 공돌이들이 차례로 내 집에서 머물렀다. 

나는 수도관이 터져 젖었다는 카펫 걱정만 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날은 기분이 안좋았다. 다시 전쟁터같은 곳으로 돌아간다는 데서 이미 서러움이 북받쳐서 공항에서부터 눈시울은 붉어져 있은데다, 부모형제애인과 바이바이하고 온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비행내내 조금밖에 자지못했고, 30키로가 넘는 이민가방 두개에다 책을 잔뜩 넣은 기내용 캐리어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녔고 공항에서 우리 동네로 가는 에어버스는 거의 한시간 반만에 왔으며, 에어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좋다던 캘리포니아 날씨는 비까지오고 쌀쌀해 몸이 꽁꽁 얼었으며, 에어버스 종점으로 픽업나오기로 했던 이와는 오해가 있어져 또 한참을 짐옆에서 하릴없이 기다렸다. 

그렇게 홈 마이 스윗 홈으로 돌아왔는데..

정말 울고싶었다. 내 집은 내가 정성들여서 돌보는 작고 아늑하고 깨끗한 곳이었는데.. 아..

어디서부터 손봐야할지 모르는 카오스였다. 변기는 더럽고, 쓰레기통은 비워져있지 않으며, 부엌 바닥은 끈적거리고, 온 집에 거미줄이고, 화장실 선반에 있었던 내 바디샤워며 스크럽이며는 무슨짓을 했는지 물이 들어가 다 썩어있었고, 빨래를 하려니 텅텅 빈 세제통만 덩그러니 선반에 있을 뿐이었다. 가져가지 않은 잡동사니며 음식들이 냉장고에 널부러져있고, 제대로 닫지않은 김치통 때문에 김치냄새가 냉장고에서 진동을 했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깨끗한 시트와 솜이불이 없었으면 나는 진짜 폭발해서 인연 셋쯤은 날려먹었을거다. 

겨우겨우 일단 자고 이성을 회복하자라고 생각하고 잤다. 그리고 집 치우는데 삼일을 썼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와는 막역한 지간인 내 집의 단기세입자들에게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일이 나의 첫 TA 섹션이 있는 날이다 .하루에 세 클래스를 가르치는데다, 영어로 지껄여야되는 압박감에 이미 신경이 날카로워져있는데 실라버스는 작성해 뽑으려는 순간! 프린트 용지가 하나도 없다!! 

시간은 이미 12시를 넘어 살 곳이 없고, 내일 내 클래스는 아침 일찍부터라 어디서 프린트 할 곳도 없다. 분명히 나는 코스트코에서 박스로 용지를 사다가 프린터기 옆에 놓고 쓰는데 그 박스가 통째로 사라졌다. 

아마 오빠들이 별 생각없이 종이 없는데 좀 쓰지라면서 들고갔거나, 자기건줄 알고 들고갔겠지. 

나는 이미 예민할대로 예민해있고, 최대한 긴장을 풀면서 내일을 준비해야하는데 다 글러먹었다.


뚜껑이 열렸다. 


그 오빠들 중 하나가 내일모레 인생이 걸린 스크리닝 테스트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해서 악다구니를 쓸 뻔했다. 겨우겨우 누르고 여기저기 가슴을 졸이며 전화를 걸어 지금 새벽 두시인데 겨우 프린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있는데 페이스북에서 나를 빡치게 한 당사자가 말을 건다. 내가 페이스북에 매우 화났고 나이스한 인간이 되는 건 어렵다고 올려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나는 그 오빠의 시험걱정을 해주고, 빨리 자라고 하고, 나의 뚜껑이 날라간 이유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하고 나이스하게 대한다. 

아 정말 화난다. 

 

by Alice | 2011/09/27 18:15 | 트랙백 | 덧글(2)

늙는 것이 기다려진다


당신과 함께 늙어갈 나날들이 설렌다. 

 

by Alice | 2011/09/26 09:44 | 트랙백 | 덧글(2)

우린 맞지 않아요.

당신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선하고 좋은 사람이겠지만

당신이 열렬한 종교인이라면
당신이 채식주의자라면
당신이 고상하고 우아한 말투로 일관한다면
당신의 주된 관심사와 대화 주제가 이성에 관한 것, 혹은 스포츠라면
당신의 정치성향이 보수라면
당신에게서 좋지않은 냄새가 난다면
당신이 술을 전혀 하지않는다면
당신이 당신의 예술취향-특히 음악이라든지 영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이 콧소리가 섞인 발성을 낸다면
당신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음식을 먹는다면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면
당신이 전화통화를 좋아한다면
당신이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한다면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될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합니다.
연인관계는 더더욱 그렇겠지요.
문제는 당신쪽이 아니라 나에게 있어요. 미안합니다.

by Alice | 2011/09/21 15:16 | 트랙백

요즈음의 기록

1. 과의 모두가 한마음으로 걱정하던 나의 TA oral evaluation은 무사통과. 이 영광은 나를 쪼아서 조금이나마 연습하도록 이끄신 우리 지도교수님께 돌립니다. 그래서 1년간 fee와 stipend이 해결되었다는 이야기.

2. 작은아버지가 루게릭으로 확진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병원에서는 2-3년 남았다고 이야기한다는데, 참 안된 일이다. 나는 이 숙부를 친가쪽 인물들치곤 그나마 좋아했다. 그 괄괄한 성정과, 말술과, 투박한 행동거지를 좋게 보았고, 아버지의 돈만 노리는 다른 친척들보다는 그런 투박함이 나아보였기 때문. 그 숙부의 자식들도, 숙모도 약삭빠른 면이라고는 없어서 그나마 호감이었는데 그 가정에 이런 불행이라니.. 뭐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해드릴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3. 그래서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언제나 내 죽음을 주체적으로 컨트롤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고사나 돌연사가 아닌 이상 의연하고 고상하게 죽어야지. 하지만 루게릭과 같은 병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기 힘들게 할 것 같다. 나는 가망없는 병에 걸리면 사랑하는 사람과 품위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여행을 하고는 한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지내다 그들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작별인사를 하고 죽을 거라고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루게릭과 같은 병이라면 유럽에 가서 안락사를 시도해야겠다. 나는 화장될거고, 내 재는 전라도 식영정 밑, 티벳고원, 그리고 갠지스강에 나뉘에 뿌려달라고 할 것이다. 그 정도는 해주겠지 다들.

4. 한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불순해보이지만 우리집을 share하는 건전한 관계다. 우리집은 복층인데 내가 2층을 쓰고, 그 오빠가 1층을 쓴다. 감당하기 벅찬 1200불의 집값도 좀 덜고, 그 오빠의 훌륭한 요리를 먹기도 하고.. 그 오빠가 딴 지역으로 가기 전의 3주간이니 견딜만하다. 그런데 이 양반은 교회신도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나는게 싫다며 무슨 첩보작전 펼치듯이 집을 드나들고 그것때문에 나도 불편하다. 거짓말도 해야하고, 조심도 해야하고. 그게 그렇게 부도덕한 일이면 들어와살지 말지? 떳떳하면 그걸 가지고 뒷얘기하는 이들을 불쌍하고, 한심하게 생각하면 그만 아닌가? 난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렇게 쉬쉬하니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인다. 젠장!

5. 여기서 한국인 유학생 부부들을 많이 보는데 하나같이 서로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하고, 알콩달콩 즐겁게들 살아서 삼분의 일에 육박한다는 이혼률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궁금해졌다.

6.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기사를 가끔 읽는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는 이름도 쓰지않더라. 한 인간을 대변하는 것은 남자니 여자니 하는 성별과, 1호, 2호 등의 숫자와, 학벌 직업 집안과 같은 소위 스펙 뿐이다. 한 인간의 성격도 가치관도 가족이 얼마나 화목한지도 반영되지 않는 인간 계량화의 극을 본것 같은 느낌이다. 매우, 매우 불편하다.

7. 드디어 나도 J의 갤럭시 S를 물려받아 스마트한 인간이 되었다. 카카오톡도 할수있다!!

8. 두 동생은 날이 갈수록 귀엽게 생각된다. 둘 다 한 사춘기들 하신지라 한때 있는 정 없는 정 다떨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귀엽다. 한놈은 트롤, 한놈은 오크, 둘 다 순박하니 참 귀엽다.

by Alice | 2011/09/17 14:23 | 트랙백

맛있는 음식이지만 나는 못먹는 음식

장어

그린키위

오뎅

반숙한 달걀

추어탕

또 뭐가 있을라나. 시간 날때마다 추가해 봐야지!

by Alice | 2011/09/15 05:59 | 트랙백

서럽고도 달콤하구나 나의 타향살이여.


그렇다. 돌아왔다. 미국.

미국으로 오기 바로 전에 일주일 푸켓 여행을 갔었다. 우리는 두곳의 리조트에서 반반씩 머물렀는데 마지막에 머문 리조트는 정말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스타일리쉬해서 떠나기가 싫었다. Indigo Pearl이라는 곳인데 나는 그곳에서 인생 처음으로 반딧불을 보았다. 마지막 밤에는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물에 비치는 달빛과 그 달빛을 받아 물에 어른거리는 야자수들을 바라보면서 수영을 했는데 꿈만 같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것 같았다. 나는 여행을 많이 해서 이제 어떤 자극에도 무감해졌는데 이번 푸켓 여행이 이렇게 사무쳤던 것은 바로 내가 미국으로, 나의 전쟁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 한해의 미국생활은 정말 지옥같았고, 천국같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똑똑한 애였다. 나는 어릴때부터 남다르게 책을 읽어댔으며, 강한 자의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는 수학과 과학에는 흥미도, 재능도 없어서 전교 1등을 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으나 언제나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나를 특별한 존재로 대우해주었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자도, 남들이 다하는 야자를 안한다고 선언하고 집에 돌아가도, 선생님하고 대립해도 내가 학교에 갖다주는 논술대회 상장들이면 모든 것이 오케이였다. 결국 서울대를 못갔어도 나는 언제나 인문학에 특화된 인재로 나를 인식했고, 남들도 그랬다. 이런 지적 허영심으로 나는 그동안 오랜시간을 지내왔다. 대학원 세미나에서 내가 제일 낫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피드백을 가장해 남들을 조롱하면서, 그런 재미로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남들보다 지적 능력이 한참 뒤쳐진 어린아이일 뿐이다. 다른 대학원생들과 내가 책을 읽는 속도가 얼마나 차이가 날까? 다섯배? 열배? 수능영어 만점에 GRE도 3%를 받았고, 토플도 100점을 넘긴 나는 여기서는 그냥 한참 뒤쳐지는 사람일 뿐이었다. 첫수업은 역사철학이었다. 나는 그 분야에 관심도 없고, 공부해본적도 없다.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나는 철학을 싫어한다. 나는 언제나 수업시간 전까지 텍스트를 다 읽지 못했으며, 그 상태로 리뷰를 쓰고 토론을 해야했다. 영어로 하는 철학토론이란 내가 해왔던 역사 토론이나, 강독이나, 또는 일상회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C를 받았어도 할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흥미를 잃었다. 내가 하는 공부는 언제나 나의 자존심을 떠받드는 기둥같은 거였다.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이상, 나는 공부에 미련이 남을리가 없었다. 그나마 나의 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아는체를 할 수 있었고, 점점 나아지고는 있다.

그러나 나의 달콤한 집과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오늘 지도교수님을 뵙고 왔다. 방학동안 만사 귀찮았던 내가 이메일 체크를 안하자 몸이 달아 몇 단계를 거쳐 내 한국 전화번호를 알아내 문자를 보내신 극성아빠같은 교수님은 내일 모레로 예정된 oral test-international이 TA를 하기 위해서 꼭 거쳐야하는-에 나보다 더 걱정이셔서 오늘 열시에 나를 불러서 상의하고는 한시에 다시 오게 해서 옆방 교수님까지 불러다가 리허설을 시켰다. 가서 되는대로 지껄이려던 나는, 교수님의 성화에 얼떨결에 열심히 하고 만다. 내일도 가야한다! 나에 대해 욕심이 많은 교수님은 역시 오늘도 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학습 계획을 다시 주입시키셨는데, 나는 여기서 멍청하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는 나는 그래도 선생님이 포기하실 정도는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다가 오늘 두분 다 내 영어가 훌륭하다고 해주셨는데, 정말 nice함의 표본같은 분들이라 그대로 받아들일 수야 없겠지만 배려를 해주는 그 맘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동료들이 있다. scholarship으로 일년을 무위도식한 덕분에 학과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 수업시간에 봐서 얼굴만 익힌 몇명뿐이지만, 같이 공부하는 유학생들과는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쳐있다. 어제 나를 데리고 저녁을 먹으려고 문을 두들기고 내 이름을 외쳤다는 이(자고있었음), 오늘 일곱시부터 짐 옮기는 것을 도와준 이, 막 돌아온 내가 허기질까봐 밑반찬과 비빔면을 식량으로 남겨놓은 이, 하나하나 소중한 사람들이 열 손가락을 넘긴다. 감사한 일이다.

아름다운 동네. 붐비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인데, 이곳은 그런 나에게는 딱 알맞은 사이즈의 도시이다. 게다가 일년내내 조금 더운 초가을, 조금 추운 초가을, 어쨌든 초가을 날씨를 유지하는 곳. 추위를 크게 타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가 없다. 바다도, 산도 있고, 사람들은 친절하며, 날씨는 청명하고, 공기는 맑다. 어제는 Farmer's market에 나가 4달러짜리 작은 꽃다발과 유기농 토마토 네개, 포도 한송이, 오랜지주스 반리터를 사왔다. 꽃은 너무 예쁘고 과일과 주스는 꼭 설탕을 탄것처럼 맛있다.

이렇게 서러워하며 달콤해하며 시간이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을 뜨는 날 행복하게 이 시간들과,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by Alice | 2011/09/13 07:11 | 트랙백 | 덧글(4)

기록

1. 연애를 하면 가장 크게 느는 것은 영화관에서 영화보는 횟수다. 영화관람은 아무래도 제일 만만한 데이트코스. 요즘 '써니'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았다. 평소 내 취향으로는 보지 않았을 영화들이지만 데이트하느라 볼만한 영화들은 다 본 상태고,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가기 싫어서였다. 아 '퀵'도 봤네. 기대는 1g도 안하고 봤지만 '퀵'과 '써니'는 가볍고 즐겁게 시간때우기 좋은 영화였고 의외로 요즘 여기저기서 극찬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은 크게 재미있지 않았다. 철새떼나 꽃무리의 영상은 좋았지만 스토리가 지루하다. 극히 개인적 취향.

2. 푸켓에서 워터파크인 '스플래시 정글'에 가보기로 했다. 사람이 정말 없단다. 하긴 리조트마다 근사한 풀이 있고, 조금만 나가면 전용 해변이 있는 푸켓에서 누가 거금을 들여 워터파크에 가겠는가. 히히. 미끄럼 잔뜩 탈 수 있겠다. 캐리비안 베이의 아쉬움을 달래는 차원에서..

3. 방에서 책읽다가 무심코 나간 거실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았다. 인육캡슐에 대한 내용이었고 비위가 약한 나는 토할 것 같았다. 그런 천박한 인격으로 뭘 오래살으려고들 하는지. 태아까지 먹어가면서. 그런 인간들은 일찍 뒈져주는 게 인류에 보탬이 되는 거다. 참 곱게 얘기하기 힘든 주제다.

4. 미국 집의 방문은 칙칙한 나무색으로 페인트질되어 있는데 나는 그게 참 싫다. 그래서 거실쪽 문은 아이키아에서 사온 천으로 감쌌는데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래서 나머지 방문도 질감이 이쁜 한지로 감싸보려고 일단 한장 사왔다. 풀을 써야할지 양면 테이프로 될지 아니면 천 붙이면서 샀던 스테플러총(정확한 이름은 뭐지?)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5. 100% 완벽한 화학작용같은 순간을 보냈다. 첫사랑과는 두번정도였다. 그애가 해병대 복무중일때 내가 면회를 갔고 천상 남자라 힘든걸 표현못하는 걔를 포옹했을때가 그 100%의 첫 경험이었다. 평범한 포옹이었지만 당사자들은 그 느낌을 안다. 몇년 지난 후에 그 친구도 그 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 친구 이후로는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완벽한 공감과 충족의 순간이 J와는 매번이다. 서로의 파장? 에너지?같은 게 맞는 걸까. 

 

by Alice | 2011/08/07 16:01 | 트랙백 | 덧글(1)

요즈음의 기록


1. 저번에 온 비는 정말 무서웠다. 도시의 잘 정비된 구역의 고층아파트에 살아 무슨 천재지변이 와도 나랑 상관없겠거니 했던 나는 모교 근처인 대치동이 물에 잠긴 것과, 골프연습장, 부모님의 지인들이 많이 사시는 곳의 산사태를 보고는 완전히 식겁했다. 그리고 무슨 비가 이렇게 많이 오냐. 정말 지겹고 지겨운 비다.

2.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다. 골프도 두달째 넘어가는데(게으름 부리고 빠져먹은 거 치면 한달 좀 넘으려나?) 뒷땅의 천재. 부모님이 저번에 동생이랑 나 데리고 스크린 갔는데 처음 쳐보는 동생은 아이언으로 내가 드라이버로 치는 거리의 두배를 친다. 운동의 재능은 왜 우리 남매에게 극도로 불공평하게 분배되었는가. 그나마 힘좋은 동생이 아빠 드라이버 헤드를 날려먹어서 쿠사리 먹은게 위안. 트롤같은 놈.

3. 막내가 집에 휴가온 김에 케리비안 베이 가고 싶다고 해서 온 가족이 출동. 이건 무슨 어린애 둔 집안도 아니고.. 다들 막내 기분에 맞춰준다고 그냥 간건데 가서는 다들 즐거워했다. 특히 아빠의 파도풀 사랑은 정말. 딱 일곱살 어린애의 표정으로 파도를 타러 안쪽으로 헤엄쳐들어가는 아빠. 체통은 어디에. 나도 처음 가본건데(은근히 서울 촌년. 나와바리를 벗어나면 불안해한다.) 은근히 재밌었다. 푸켓에도 워터파크 있다는데 가봐야겠다. 사람도 별로 없대고 재밌을 듯.

4. 받고싶은 시술이 있는데(성형은 아님. 이나이에 성형하면 티나서 안돼.) 200 좀 넘을 거 같다. 미국의 내 통장 잔고로 계산하면 다음 1년동안 언젠가 생활비가 펑크날텐데. 부모님께 또 손벌리게 생겼다. 근데 미국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가 얼마나 나오려나.

5. 내년에 우리학교 대학원에 들어오는 신입생중에 나랑 같은 해에 박사과정 들어온 애의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과학고 나와서 국제 물리학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그쪽으로 키워진 애인거 같은데 전공을 음악으로 들어온단다. 멋진데!! 나는 그렇게 삶의 궤도를 용감하게 수정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이 있다. 내가 못 그러기 때문. 친해져서 좋은 술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6.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 진압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리고 카스 시내에서 무차별 대량살인이 일어난 걸 보니 어쩌면 내가 위험을 잘 피해간 것 같다. 내 여행 루트에 의하면 그때가 내가 딱 카스에 있을 날짜였고, 카스에 있었으면 나는 하나뿐인 시내에 관광하러 나갔겠지. 내가 죽는 것도, 누구의 죽음을 보는 것도 똑같이 두렵다.

7. 나는 스물 아홉. 대학 들어와서 세웠던 20대에 20개국 여행하기는 이번 여행이 수포로 돌아가며 19개국에서 멈췄다. 그렇게 중국만 드나들지 말고 여기저기 가볼걸. J는 여행을 저지한 장본인이라 홍콩도 나라로 쳐야한다, 경유한 나라도 쳐야한다고 주장했지만 기각. 내가 지나쳤던 나라들을 기록해본다.
북미-캐나다 미국(2)
아시아-중국 일본 몽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라오스 인도네시아 인도 필리핀(10)
유럽-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체코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7)

그리고 나의 30대 계획은 다음과 같다.
티벳-네팔 루트
이번에 못간 실크로드 천산남로(서안~이란) 루트
동유럽 루트
브라질-쿠바

화이팅

8. 나는 자아과잉인 사람들이 싫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 특징이 있는데, 자기를 어떤 부류라고 끊임없이 분류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성향이 있지만 이들의 관심은 자신이(또는 자신의 가족이나 애인(보통 자랑할만한)) 어떤 인간인지를 지치지않고 떠드는데 있는 것 같다.

9. 아빠는 잘난체쟁이. 내가 또 한가지 못참는 사람은 잘난체하는 사람들(내가 잘났다고 인정하는 인간 제외. 응? 근데 생각해보니 내가 인정하는 분들은 잘나도 잘난체 안하네.)인데 아빠는 요 몇년 완전 시골 노인네가 되어서는 모든 것에 자기가 아는 지식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옛날에는 아빠의 그런 유치한 면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잘 맞춰줬는데 요 몇년 나도 못돼졌는지 짜증만 나서 중간에 쏘아붙이기 일쑤다.

10. 다음학기 수업은 로마사세미나, 이집트고고학 세미나, 중국사 인디펜던트 스터디, 일본어, 영어 라이팅+TA로 애들 가르치는 것 일주일에 세시간, 수업참관 일주일에 세시간.. 허허허.. 어떻게 되겠지.






by Alice | 2011/08/04 21:14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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