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감기


이곳을 떠나기 전인 지금, 집 계약기간은 끝났고 해서 과 동료들 네 명이 동거하는 집에 잠시 신세를 지고 있다.

나는 꼭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몸살이 나는데(물론 해야할 일들을 끝까지 미루고 안하다가 막판에 처리하는 바람에) 역시 목감기에 된통 걸리고 말았다.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갔는데, 목은 따갑고 기침도 나오고 괴롭지만 왠지 허스키한 목소리는 섹시하게 들려서 동료들이 거실에 앉아서 노닥거리는데 난입해서 나 섹시하지 않냐며 까불다가 동료들의 추임새에 고조되어서 노래도 한 곡 뽑고 말았다.




요 노래.. 르네 언니 언제나 귀여우시군요. 물론 내가 저렇게 귀엽고 요염할 리는 없고 파자마 자락을 잡고 쉰 목소리로 삑사리를 내가면서 부른 코믹버전..

하지만 다들 자지러지는지라 자폭개그가 먹혔다는 성취감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동료들은 나를 조용하고 수줍은 애로 아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내가 가끔 골때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반응이 더욱 좋다. 성격이 그런게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 조용한거다 이놈들아.


by Alice | 2012/09/04 20:04 | 트랙백 | 덧글(4)

기록

1. 두 아이를 둔 엄마가 성범죄 전과자에게 살해당한 기사를 읽고 너무 마음이 아파졌다. 예전에 저런 강력범죄 뉴스를 막내동생이랑 보다가 '누가 널 저렇게 죽이면 내가 어떻게든 그 새끼를 죽여줄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동생은 '누나 사형 폐지론자잖아'라고 했다. '응.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꼭 죽여줄게' 애정표현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나름의 용기를 낸 애정표현인데(진심이기도 하다.) 차도남의 전형같은 막내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그냥 냅둬'라고 거절했다.

2. 잼보다는 버터. 난 단 걸 좋아하는데 의외로 잼은 별로 안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동네 파머스마켓이라든지 한국의 패션 파이브에서 파는 색색깔의 잼들을 보면 너무 예뻐서 사고 만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썩힌다. 기내식에서 내가 제일 화나는 건 버터가 다 얼어 나와서 빵에 잘 안발리는 거다. 가끔 비지니스석을 타는데 거기 버터는 보통 부드럽다. 딱한번 또 굳은 버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승무원 언니가 신문은 죄송하지만 이것뿐이네용이라며 조중동세트를 들고 왔을 때보다 더 화가 났다. 2배나 돈을 더주고 탔는데 나한테 빵에 제대로 발리는 버터 하나 못주는거냐!

3. 조중동 얘기가 나온 김에.. 전에 언급했던 악담의 신동 K는 아버지 덕분에 한나라당 의원들과 집안끼리 돈독한 사이다. 저 조중동 사람들과도. 요 근래 K는 조중동(중 한군데의) 기자와 소개팅을 했다. 뭐 이래저래 연락은 하는 모양인데 K가 요즘 바쁘시겠네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 여자분이 '네. 저는 정권의 나팔수니까요.'라고 답문했단다. 조중동은 싫어하지만 저런 시크한 유머감각은 맘에 든다.

4. 슬슬 짐을 정리하고 누구 주기도 그렇고 가져갈 수도 없는 물건들을 우리 아파트 단지 내의 swap shop에 가져다줬다. 뭐 자질구레한 살림살이가 대부분이고 남이 먹던걸 먹으려나 반신반의 하면서 집에 남은 오일들이랑 양념류랑 식품들도 가져갔는데 왠걸.. 우리집근처에 애가 여섯명인 집이 있는데 그집 아줌마가 너무 좋아하면서 가져갔다. 예전에 소고기 고추장 볶음을 만드려고 산 잣(물론 요리는 실패..ㅠㅠ)도 가져갔는데 또 한 아줌마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한테 막 너 기적을 믿냐고(not really..) 자기네가 요즘 직업이 없는데 누가 뭘(뭔가 요리재료) 줘서 뭘 만드려고 했는데 잣이 없어서 못만들고 있었는데 니 덕분에 오늘 애들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악세서리류도 왜만한건 그냥 버리고 비싸고 예쁜데 내가 안쓰는 것만 내다놨는데 사람들이 다 쓸어갔다. 그냥 버리지말고 다 갖다줄걸.. 거기 사는 사람 다 대학원생 가족인데 다들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걸 보니 좀 반성도 되고, 난 싱글이라 여유롭게 살지만 나중에 가정을 이루면 돈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5. 한국가서는 한국책을 잔뜩 읽으려고 벼르는 중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아무래도 추리소설..그리고 범죄심리서.. 제일 싫어하는 장르는 자기계발서(약팔지마라 인간들아..).. 요즘 괜찮은 추리소설이 뭐가 있나 막 찾아보고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 게다가 푸켓에는 한참 기사가 쏟아지는 그레이의 50가지 어쩌고.. 제목이 뭐더라.. 어쨌든 그 아줌마들이 많이 읽는 야한 소설을 가져갈까 생각중이다. 원래 그런 연애소설?은 안읽지만 휴가잖는가! 원래 내가 안하던 짓을 해보는 것은 왠지 대담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작년에 푸켓에 가져간 책은 연쇄살인범파일..

6. 통진당이 한심해진 건 오래전이고, 요즘 경선을 보니 민주당도 역시 ㅉㅉ.. 신경 좀 끄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by Alice | 2012/08/28 13:28 | 트랙백 | 덧글(4)

폰의 사진 몇장


1.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아멘.

 
2.

위스키를 하루종일 심심하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나름 마음에 드는 것인 데다가, 내 구두 중에서 제일 최근 구매한 것, 게다가 발 크기에 맞는 신발이 잘 없는 나라서 주문제작한 구두인데 이렇게 초토화. 너무 화가 나서 때려주고 싶어서 얼른 화장실에 가둬버렸다. 내가 진정할 때까지.. 아.. 아직도 맘이 아프다.


3.

푸켓용(?)이라며 산 판도라 팔찌. 제일 왼쪽의 수트케이트 참이 제일 맘에 든다. 비행기 참이랑 세트인데 비행기는 못사서 좀 아쉽다. 하나하나 참을 끼우다 보면 통장잔고에 참사가 벌어지는 판도라 팔찌. 

4.  

할로윈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동네 할로윈 엄청 재밌는데 쩝.. 사진은 작년 호박들을 산 호박밭. 앞쪽에 따놓은 걸 고를 수도 있고 뒤의 밭에서 맘에 드는 걸 따올 수도 있다. 나는 제일 못난 호박들을 사왔었다. 

5. 

 
의욕만은 낚시왕. 하지만 한마리도 못잡아 봤다는 게 함정. 그래도 한동안 도서관에서 필만 받으면 피어에 나가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오빠들은 웃겨죽고, 맨날 구경하러 왔었다. 이 사진의 포인트는 날씨가 추워  연구실에 있는 모든 이의 옷을 다 겹쳐입고 눈사람이 되어버린 나.

6.
작년 땡스기빙. 이것 말고도 뒷쪽에 음식이 잔뜩. 다 나와 친구들이 만든 거다. 저 초록색 그릇은 내가 큰맘먹고 산 전시용 이탈리안 포터리 그릇인데 저 날 쓰고 이가 나갔다. 쩝.. 칠면조 뱃속에 크렌베리랑 뭐 이거저거 넣어야 된다고 T가 그랬는데 다들 징그럽다고 아무도 안건드려서 결국 내가 칠면조를 범하게(?) 되었다.

7.

저번 크리스마스. 나와 J가 직접 장식을 골라 만든 리스. 예뻤다. 오늘 S오빠네가 가져와서 내가 버리고 갈 물건들 중 쓸만한 걸 골라갔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이랑 트리랑 다 가져갔다. 섭섭했다. 그래도 중고가게에서 산 빈티지 트리 장식들은 다 한국으로 보냈다.

by Alice | 2012/08/21 15:17 | 트랙백

Johnny Cash - Hurt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와 함께 멜랑꼴리한 심야를 책임지는 양대 산맥. 조니 캐쉬의 노래는 내 취향인 것도, 아닌 것도 있지만 이 노래만은 진리이다.
 
이 노래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라짐'이다. 삶의 끝에 서서 자신의 일생을 반추하는 대가의 노래란..
 
내가 역사에 매력을 느꼈던 제일 큰 이유도 저 '사라짐'에 대한 애틋함이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지금 나와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고뇌하고 사랑하고 격렬하게 삶을 살아냈다. 하지만 세대가 채 몇번 바뀌기도 전에 그들의 격렬한 삶은 대부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인간의 삶이란 하나하나가 드라마이지만 허무하다. 나는 그 허무함에 매료되었었다. 그렇게 카리스마가 있었던 묵특선우가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려가며 세웠던 흉노도, 황실 안에서의 그 치열한 암투도,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도, 이릉도, 소무도, 그 희노애락도 결국은 nothing이다.

by Alice | 2012/08/21 06:06 | 트랙백

일상 기록


1. 어제는 다운타운에서 쇼핑을 좀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에서 저녁을 먹었다. 야외 좌석에 앉았는데 밖으로 오픈형 투어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이나서 버스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그걸 본 바 안의 사람들도 손을 흔들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같이 춤을 췄다. 여기는 참 스스럼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길을 가다가도, 어딘가에 앉아있다가도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청해오는 대화에 응하게 된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한 30분 산책에 최소 열명 정도는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이게 고새 버릇이 되어서 서울에서 별 생각없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걸었다가 왠지 이상한 시선을 받은 적이 있다.

2. 너무 못된 마음을 먹어서 내가 내 자신에게 놀라게 된다. 어쩌면 그런 일을 바랄 수 있을까.. 세상에.. 하지만 놀랄 뿐이지 그 못된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다. 후회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 행동하는 건 아니지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내 자신이 어이가 없다.

3. 저 내 못되먹은 인성 하나 더. 나는 언제나 연애가 끝나면 대부분이 내가 끝낸 연애이고, 아니면 도저히 유지하기 힘든 관계여서 깨진 연애였는데도 못된 맘을 먹었다. 한번도 나쁜 사람과 사귄 적이 없고 나쁘게 헤어진 적도 없었는데 나는 내 전 애인들이 죽을듯이 괴롭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괴로워할 행동을 하기도 하고, 흘러흘러 전해질 것을 의식하면서 그 사람들을 괴롭힐 말들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었나.

4. 다음에 언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면서 다음번에 탈 차를 고심하고 있다. 나는 마초마초카를 좋아하는데(내가 보기에) Jeep과 Hummer와 Escalade가 타고 싶다. 조금 일반적인 버전으로는 FJ Cruiser. 물론 살 돈이 있다는 건 아니다. 상상하는 건 자유..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허머. 원래 나는 무조건 빨간 차를 좋아하는데 왠지 허머는 국방색이 진리. 마초마초!! 함정은 내 주차실력. 전방주차밖에 못합니다 ㅋㅋ 또 하나 함정은 치마만 입는 나에게는 저 차들에 올라타는 게 힘들다는 거. 절친 G양의 차가 FJ인데 그 차 탈때마다 볼썽사나운 꼴을 연출 ㅋㅋ

5. Gopro 카메라는 도착했지만 기계만지는 걸 싫어하는 나는 박스만 뜯은채로 테스트도 안해보고 방치.. 집에 가서 동생에게 던져주고 설명서를 읽힌 다음 개별 과외를 받아야 쓰기 시작할 테다.

6. K는 내 대학원 남자후배인데 남 약을 잘올린다는 특기가 있다. K의 아버지는 유명 소설가인데 창의력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나 보다고 내가 언제나 칭찬해 마지않는다. 문제는 아버지의 필력이 논문이 아니라 남 약올리는데만 유전되었다는 거.. 어쨌든 내가 석사학위를 받았을 때 나를 싫어하던 선배 중 하나는 심사에서 미끄러졌다. 내가 과사무실로 배달시킨 논문을 찾으러 갔을 때, K와 그 선배가 사무실에 있었는데 K왈 '김석사! 논문 사인 좀 해줘봐! 응? 김석사!' 이것은 이놈이 그 선배를 약올리려는 것인 줄 나는 당장 알아챘다. 나도 그 선배한테 당한 게 많았으므로 '아유 무슨.. 요즘 석사 개나 소나 다하는데..'로 응답. K의 마지막 한방 '뭐 개소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거 같드만..'

뭐 비슷한 이야기로는 선배중에 유난히 몸에서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었다. 좀 심해서 아무도 그 옆에 앉으려고 하지않았다. 하루는 여름이었는데 나는 그 선배와 사무실에 같이 있게 되었다. 냄새는 그날따라 더 심했고 나는 입으로만 숨을 쉬며 왜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않는가 회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K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야! 여기 왜이렇게 X냄새가 나!' 아아 너는 못되먹었지만 나는 너의 독설을 끊을 수가 없구낭. 한국가면 술먹자.

7. 우리는 기업에게 어느 정도의 역사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예를 들어 나치에 협력한 독일 회사들. 지금은 오너도, 주주도, 직원도 다 바뀌었을 텐데 그렇다면 과거의 과오는 지워지는가. 스왈로브스키 귀걸이를 하나 사려는 참에 뉴스에 뜬 스왈로브스키의 노동 착취 역사를 읽고 생각해보고 있다.

8. 현학적, 형이상학적인 글을 싫어한다. 내가 좋아하는 건 명쾌하고 간결하고 센스있는 풍자가 살아있는 글.(초기 딴지일보의 글글들은 그랬다.) 물론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알드 달의 단편은 멋지다. 아이들용으로 축약된 게 아닌 피터팬의 오리지널도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다.(불쌍한 웬디 아빠.. ㅋㅋ) 나는 뭔가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닌갑다. 섹스코미디도 엄청 좋아한다. 장진감독의 작품도 좋아한다.

9. 갑자기 생각난 건데 그들은 발견되었을까. 내가 한창 중국여행을 하던 무렵, 중국 내륙에서(정주쯤이었나..) 여행하던 여성분이 사라진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내가 잘가던 중국여행 커뮤니티를 통해서 혹시 그 여성분이 갔을 만한 루트를 수소문했고, 그 지역을 얼마 전에 여행했던 나는 몇가지 루트를 써서 정성껏 보냈었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일본 대사관 사람들이 빠하르간지에 게스트하우스마다 한 청년을 찾는 벽보를 열심히 붙이고 다녔다. 운도 없는 그 청년(스무살 정도였던 듯)은 도착 첫날 공항에서 빠하르간지로 향하는 사이에 사라졌단다. 그 사람들은 다시 나타났을까..



by Alice | 2012/08/18 12:58 | 트랙백 | 덧글(7)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


1. 공지영 작가 혹은 나꼼수의 경우 거칠게 분류하자면 정치적 성향이 나와 같은 쪽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런 대중에게, 특히 인터넷상의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일부 인사들의 언행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귀울여주는 것이 사람을 흥분시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트위터같은 경우 그런 반향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 그 흥분은 더할테다. 하지만 그 소위 유명 인사들이 자기들이 만들어 낸 반향에 휩쓸려 흥분하고, 점점 더 정제되지 않은 글과 말과 행동을 쏟아내는 것이 보인다. 과격하고 솔직하고 친근한(또는 격이 낮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쿨하다고 간주되고,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나꼼수의 경우에도 몇몇회를 들어봤는데 초기에는 아주 참신하고 유쾌하고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방송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점점 자극적이고 과격한 언사를 쏟아내게 되면서 초반의 그 유쾌함은 사라졌다. 그들은 영향력이 큰 인사들이니만큼 공정성과 이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하는데 내게 보이는 건 그것보다는 선동이다.

2. 1번의 내 글이 웃긴다. 저런 '진보측' 인사들을 비판면서 '나도 사실 진보성향인데'라고 연막을 치는 꼬라지하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의 이야기. 나는 당시 굉장히 큰 화장품 관련 카페를 이용하고 있었다. 20대 내내 내 화장품과 뷰티 관련 모든 정보는 그곳에서 얻은 것이었다. 나처럼 유행에 둔감한 사람에게는 정보의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다. 노전대통령 서거 후, 그 카페에서는 카페에 서거 관련 이야기 빼고는 아무 글도 올리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어쩌다 평소처럼 화장품 관련 글을 올리면 많은 이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 시국이 이런데 정신이 있니없니 하면서 물어뜯었다. 사람들은 그 당시의 물결에 휩쓸렸고 빈소를 찾고, 봉화마을을 찾고, 불매운동을 하고.. 이건 인터넷상의 계엄분위기랄까.. 그 카페에서 그런 분위기를 조심스레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언제나 말머리에 저는 투표도 누구에게 했고, 조문도 갔다왔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자기도 사실은 너네와 같은 편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나는 저 '군중'이 불편하다. 노전대통령 장례식때, 영구차를 뒤따라가며 울던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육영수씨 서거 때 큰길에 나와 울던 사람들과 본질은 같다고 난 생각한다.

3. 동물애호가들이 불편하다. 나는 견주이고 내 개를 매우 사랑한다. 하지만 동물은 사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악마 에쿠스인가 그런 일도 개가 물론 눈물나게 불쌍하고 차주에게는 화가 나지만 그런 식으로 신상을 파고, 여론 몰이를 하고, 사람을 매장시킬 분위기를 형성해야 하는 일인지는 의문이다.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 보신탕 문제도. 뭐 위생적이지 않은 도축환경이니 뭐니 이유를 들지만 본질은 '개'를 먹는 게 맘에 안드는 거잖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은 같은 사람을 먹어서는 안된다. 종의 다양성을 유지해야, 영구히 거주 가능한 환경을 유지할 확률이 늘어나니 멸종위기종을 먹어서는 안된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치어같은 것들은 먹어서는 안된다. 나머지는 다 먹어도 된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니까 조금이라도 먹히는 쪽의 입장을 생각할 능력이 있으니, 덜 잔인한 방법으로 도축했으면 한다.

4. 위와 또 비슷한 맥락으로 채식주의 동물애호 콤보의 트렌드가 불편하다. 물론 그들의 신념은 존중하나 채식이나 동물애호가 트렌디한 생활방식으로 포장되어서 케이블 티비 따위에서 허세 가득한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 보여지는 게 불편하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 방식이 '깨인 사람'의 증거 따위로 포장되는 것도 불편하다. 그건 의식있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닌, 그 사람들이 선택한 하나의 생활 방식일 뿐이다. 저 콤보로 이미지 창출하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엿보인다. 그렇게 그 사람들이 인류와 지구에 이바지하려는 것은 그들의 선택, 내가 레어 스테이크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딴 방식으로 이바지하려는 건 나의 선택. 내가 무엇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글이 거칠지만 괜히 어제 잠들 무렵에 저런 이슈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잔 마당에 주절거려봤다. 저런 문제들은 논란의 소지가 많은 문제들이지만 뭐 밸리에 글을 내보내지 않는데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처럼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 '불편'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것은 그 기반에 깔려있는 생각을 이해는 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나 사람들의 태도가 맘에 안든다는 거다.

다 쓰고 나니 말인데 내 불편함의 제일 본질적인 이유는 '날 계몽하려고 하지마라'와 '비논리와 비이성은 싫다'인 듯.

by Alice | 2012/08/18 07:25 | 트랙백 | 덧글(2)

일상 기록


1.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실거리는? 정답은 얼음넣은 유리잔(중요하다 병째 마시는 거 안좋아함)에 부어마시는 소다.. 약간 중독되었다 할 수준이었는데 의지로 한 달 정도 끊었는데 요즘 다시 폭발해서 매일 잠옷 위에다 가디건만 걸치고 창밖으로 사람이 없나 살핀 후 집앞 세탁실 자판기로 뛰어가고 있다. 아 놔..

2. 친한 오빠와 저녁을 먹다가 둘 다 싱글인 주제에 자녀 교육방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야 뭐 전형적인 보헤미안이므로 자유방임주의. 그 오빠도 자기는 자유롭게 놓아두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 '그래도 과고는 보내는 게 좋은 거 같아.' 이봐요, 과고 가기 쉬운 줄 아나.. 그랬더니 과고가기 어렵지 않다고 그냥 선행학습만 좀 해놓으면 된다고, 과고는 머리좋고 그런 애들도 있지만 의외로 다들 자기처럼 평범하다고.. 라고 과고에 카이스트에 MIT나온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아 왜 '과고가기가 제일 쉬웠어요' 하나 쓰지?

3.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굉장히 힘든 사람이다. 한번도 깔끔하게 일어난 적이 없다. 일어난 후에는 기분도 나빠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을 때 억지로 일어나면 세상 왜사나 싶고 그렇다. 그런데 이눔의 멍멍이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나를 핥아서 깨운다. 나는 보통 무시하고 자는데, 오늘은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벌떡 일어나서는 신경질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는 좀 미안해서 나중에 12불이나 주고 프리스비를 사왔는데 관심이 없어.. 젠장..

4. 요즘 폭풍 소비.. 푸켓 리조트 질렀고, 어제는 Gopro라는 아웃도어용 캠코더?같은 걸 질렀고(약간 후회중.. 아니 사진도 안찍으면서 저거 왜 질렀지..) 오늘은 이글루스 블로그에서 보고 반한 vasa new york이라는 브랜드의 나비 목걸이와 반지를 디자이너님에게 폭풍 재촉해서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도 안된걸 질렀다.(정확히는 지를 예정. 계좌 보내주시면 바로 송금) Gilt에서 완전 내스타일 블랙 드레스를 보았으나 아무래도 꼬꼬마인 나에게 소매가 길 것 같은 예감에 가까스로 그건 억누름..

5. 예전에 중국에서 들어온 후배가 수정방이라는 중국의 유명한 술을 사온 적이 있었다. 선생님 드릴 선물이었는데, 선생님이 옆에서 내가 침흘리는 거 보고 따서 조금 같이 마셨는데 딱 두잔만 주셨음! 엄청 맛있었거든.. 쩝.. 대한항공 기내 면세에서 수정방 팔던데 사고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 ㅠㅠ 내 술친구들은 외국에 있거나, 임신했거나, 밤낮없이 논문쓰느라 술먹을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알콜중독도 아닌데 그 독주를 혼자 한병 다 마실 순 없자너..

6. 저번 주말에 이번에 이곳에서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바베큐가 열렸다. 이번에 임용된 포닥오빠의 약혼녀도 휴가기간이라 미국에 와서 만나뵈었다. 서글서글하고 좋은 분. 이 언니도 교수님이라 '교수 부부네요. 부러워요. 사회지도층이잖아~ ㅋㅋ'그랬더니 언니 왈. '사고쳐서 사회면에 나왔을 때나 사회지도층이라고 불리는거지.'음 일리있어.

7. 또 그 언니 말씀하시길 3년 전 유학생활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갈 때, 혼수용 그릇들을 잔뜩 사가서 이번에는 별로 살 게 없단다. 응? 오빠랑 사귄지는 1년도 안됐자나요! 그러니 다 희망을 가지고 대비해놓는 거라고 ㅋㅋ 이번에 푸켓에 가서 세라믹 공장 쇼룸에 들릴거 같은데 나도 미래를 기약하며 이쁜 접시들을 잔뜩 사야지! 엄마한테 욕먹을 가능성 100%

8. 푸켓 세라믹과, 이글루스 링크한 분이 올리시는 인도 물건들에 고조된 나의 물욕은 태국 가구들로 옮겨갔다. 치앙마이가 태국 가구의 본산 같은 곳인데, 당장 방랑생활을 계획하고 있으면서도 치앙마이의 가구공방들과 쉽핑방법을 열심히 서치하는 나는 뭐냐.

9. 좀 반성 중.. 모교 후배들중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쳤기 때문. 그 이외에도 그 사람의 사고방식, 말투, 심지어는 외모까지 세트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공정한 인간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J랑 통화하다가 그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J가 너는 걔 얘기 할때마다 무슨 징그러운 벌레 이야기하는 것 같은 말투와 표정으로 이야기한다.라고 했다. 아아.. 반성합니다.

10. 이곳에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온 하얗고 참한 아가씨가 있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주위 남정네들이 Alice가 걔 보는 표정이 안좋았다는 둥 이상한 긴장관계를 지어냈다. 그 아가씨는 쫄아서(아마도) 무서워보이는 언니-나-에게 아주 애교있고 예의바르게 잘했다. 그런 사람을 내가 싫어할리 없잖아. 그래서 나는 내내 그 아가씨를 예쁘고 싹싹한 애로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 오빠들이랑 식사하다가 오빠들이 걔 여우라고 뒷얘기 작렬.. 그 아가씨는 한국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술마시고는 주위 공돌이들 손도 잡고, 이래저래 오해살 행동을 했다나? 흠.. 아가씨가 정말 여우일까 아님 이 순진한 공돌이들의 과민반응일까..

11. 한국 날씨가 좀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그래서 한국에 급 귀국 결정! 

 

by Alice | 2012/08/15 06:59 | 트랙백 | 덧글(11)

여자가 안좋아하는 여자


나다..

오늘 나와 학부, 석사를 같이 하고, 다른 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 Y가 전화와서 얘기하다가 내 옛날 이야기가 나왔다. Y는 대학원 선배언니인 W언니와 절친한 사이다. 나와 W언니는 개인적으로 연락같은 건 안하고 가끔 어울려 술먹고 그런 사이 정도.. Y와 W언니는 한국, 미국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매일 몇시간씩 통화를 하는데 주제는 대부분 한국 우리 모교의 선후배들 뒷담화, 교수님들 뒷담화.. 우리 모교는 작은 학교이고, 대학원은 더욱 더 작은 사회인데 그 안에서도 온갖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Y가 야 너 없었으면 사람들 이야깃거리 없어서 어쩔뻔했냐. 그러는 거다.

난 대학원 때 남들 다하는 조교를 안했다. 대학원 수업은 많아봤자 1주일에 2번이었고, 그나마 타교 수업 듣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보통 학교를 1주일에 한번 갔다. 보통 대학원생들 연구실에 모여 공부하는데 나는 공부도 집에서 했다. 집이랑 학교는 한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잠깐 나갔다와도 머리가 아파서 드러누워야하고, 사람 북적이는 거 끔찍하게 싫어하고, 남이랑 몸닿는거 혐오하는 나에게 학교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왕복하는 건 고문과도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부때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과방에 가본 일도 없고, 과 선후배도 모르며, 혼자 수업듣고 얼른 집에 오는 게 목표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가 없다.

그런데도 대학원 선배 언니들은 나를 매우 싫어했다.

그건 학부때부터였다. 나는 일찌감치 대학원에 갈 마음을 굳히고 2학년때쯤 당시 연구교수로 학교 박물관을 담당하고 계셨던 선생님께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 분 수업을 두개째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그렇다면 박물관에서 일해보라고 하셔서 보통 대학원생들이 일하는 박물관에서 잡무를 돕게 되었다. 그렇게 당시 대학원생들과 학부생인 내가 서로 안면을 트게 되었다.

나는 그 언니들이 나를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대학원 올라와서까지. 나하고 얼굴붉힌 일이 없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그 때는 해본 적이 없다.

나중에 W언니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로는 나는 그 당시 여자 대학원생들의 공공의 적같은 존재였다.(아직도 그렇다. 석사 끝낸지 4년이고 미국온지도 한참이건만) 이유는 얄밉다는 거다. 학부생이 선생님한테 알랑거려서(그러지 않았다. 그냥 대학원갈거라고 이야기했을 뿐) 대학원생들이 일하는 데 끼어서 월급받는 것이 싫었단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나를 이뻐하셨고 나는 선생님을 굉장히 스스럼없이 대했다. 한국 대학원생들은 선생님을 지나치게 깍듯히 모신다. 나도 대학원 가보니 알겠더라. 하지만 나는 그 때 그런 도제관계(?) 따위 모르는 철없는 스물 한살 이었고, 게다가 이쁨받고 자란 나름 외동딸(남동생 둘)이었다. 아빠한테 하듯이 선생님께도 대했다. '선생님 저왔어요~'라며 박물관에 들어서서 하루종일 일이라고 생각안하고 시키는거 하면서 즐겁게 지내다왔다. 나에게는 과외말고는 처음해보는 일이었고, 선생님들이랑 지내는 것도 재밌고 좋았다. 종종 좋아하는 푸딩이나 케이크나 그런 걸 사가서 박물관 사람들과 나눠먹고, 선생님께 애인욕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개그도 하면서 지냈다. 월급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부모님 용돈 받고 있었기 때문에 월급은 그냥 열어보지도 않고 엄마드렸다.

그것도 문제였다. 대학원생들은 대부분 그 '월급'이 중요한 문제였다. 선생님이 나에게 첫월급을 주시고 그 다음날 월급으로 뭐했어라고 물어보신적이 있다. 나는 엄마드렸다고 했더니 왜 안쓰고 드렸냐고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그냥 월급드리고 용돈 받는게 흑자에요라고 했다. 그런 대화가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철딱서니없는 부잣집 기집애의 말로 뒷얘기가 돌았다. 내가 종종 사갔던 디저트류(그 대학원생들 몫까지 사갔다 물론. 그리고 해맑게 언니~이거 같이 드세요라고 했다), 가끔 쇼핑하고 들고오는 쇼핑백도 그런 내 캐릭터의 증거가 되었다. 게다가 종종 아빠가 카드를 주시면서 친구들이랑 저녁이나 먹으라고 한 때가 있었는데(내 친구들이 다들 자취해서 아빠는 나름 자취생들 영양보충 시켜주라는 배려였다), 친한 사람들 몇 명에게 그걸로 저녁사면 그것도 뒷얘기거리가 되었다. 나름 조교일, 박물관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던 대학원생들은 내가 아니꼽게 보였던거다.  

내 차림새도 한몫했다. 지금이야 나이도 좀 먹고(물론 살도 찌고) 해서 좀 평범해졌지만 그 때 나는 어렸고, 날씬했고, 이뻤으므로 온갖 화려한 차림새는 다 하고 다녔다. 과 특성상 여자들도 수수하게, 아니 좀 촌스럽게 입고다니는 게 보통이었는데 나는 튀었다. 아빠는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딸내미가 이쁘게 해다니는 걸 좋아했으므로 명품이나 사치스런 옷은 안사주셨지만 어느 정도 멋부리고 다니게 허락해주셨다. 나중에 대학원언니들이 날더러 '골빈X'처럼 입고다닌다라고 한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는 화려하게 입었지만 야하게 입는 건 지금도 그때도 안좋아하는데 왜 그랬을까.

우리과는 답사를 갔다. 아무런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나도 답사는 갔다. 좋아했으니까. 답사가면 밤마다 술을 마신다. 나는 술을 잘마신다. 그래서 결국 매일 끝까지 남는 건 남자들, 특히 술먹는 속도를 조절하는 연륜이 있는 대학원생 남자선배들과 나 정도였다. 나는 남자들과 아주 잘지낸다. 남동생 둘에, 남녀공학을 나왔고, 동네오빠들과 많이 어울려 놀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리고 자화자찬같지만 나 성격 쿨하다. 술같이 먹으면 즐겁다. 어쨌든 답사때마다 술을 먹었고, 대학원생 남자선배들과 친해졌다. 대학원생들은 어지간히 순진한지라 나에게 반한 사람도 몇명 있었다.(난 그때는 몰랐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것도 대학원생 언니들에게는 눈꼴시렸다.

그렇다. 학부 내내 나도 모르는 내 캐릭터는 '선생님께 아양떨어서 이쁨받는, 집안에 돈만 많은, 남자들에게 꼬리치는 골빈 기집애'였던 거다. 껄껄.

그렇게 대학원에 갔다. 당시 우리과 선배들은 취직에서 도피할 목표로 대학원에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세미나는 보통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중국어, 일본어, 아니면 한문 사료를 세미나원들이 파트를 나눠 번역해 발표하고, 번역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학기 말에는 페이퍼를 써서 발표하고 피드백하고. 내가 공부를 잘하고 말고는 별개로 우리 선배들은 너무 공부를 안하고 못했다. 선생님이 주신 사료의 양은 정해져있는데 선배들이 그 모양이니 보통 내가 선배들이 커버하는 양의 다섯배를 커버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너무 번역을 못해오니 그거 피드백하는데 수업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세시간짜리 수업은 여섯시간, 어떨때는 여덟시간까지 늘어났다.(중간에 끊는 것 따위는 선생님 사전에 없었다.) 나는 화가 났다. 내 피드백은 가차없었고 나는 선배들에게 면박를 줬다. 선배들은 새까만 후배인 내가 자신들을 지적하는 데 자존심이 상했다. 선생님은 내가 수업진도를 정하고, 사람들에게 각자 분량을 분담하게 하셨는데 그것도 자존심이 상해했다. 선배들은 나때문에 휴학도 하고, 선생님에게 울면서 자존심 상한다고 하소연도 했다.

그렇게 내 캐릭터에는 '싸가지없는'이 덧붙여졌다. 공부가 더 나았으므로 '골빈'은 빠진게 다행이다.

싫어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너무나 말도 안되는 루머들이 아직까지도 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학교에 잘 안가는 사람이고, 학교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아직도 내 남자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내 집안, 내 외모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돌고 있다. 제일 웃긴건 내가 가슴이 작아서 컴플렉스라고.. 내가 왜 중세풍 몸매겠는가. 비컵이면 일반 한국 여자들보다  크지않나, 가슴에 컴플렉스 가진적 없다. 또 하나는 내가 미성년자와 섹슈얼한 사이라고.. 불법이라고.. 아주 연하를 사귄적은 있지만 미성년자는 아니었다. 대학원 같은 과인 J는 내가 J 집안이 좋아서 꼬신거라고.. J는 정말 개인적인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하는 사람이라 내가 사귀기 전까진 나도 당신들도 J집안이 어떤지 몰랐지 않나. J는 무존재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사귄다니까 니네가 J신상을 파본거 아닌가. 어쨌든 너무 인신공격적인 말도 안되는 루머들.. 학력과 교양은 비례관계가 아닌가보다. 혹시 내가 공부를 다시 할 마음이 들어서 학위를 따고 한국에 임용되어 들어간다면 학계에 나에 대한 평판이 어떻게 퍼져있을지 참..(이라고 말하고 별로 신경 안쓴다.)

좀 내 이미지를 '창조'해서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내지 말고 나랑 관계를 맺어보려고 했으면 좋겠다. 나는 공정하고, 남의 말도 잘 들어주며, 여우같은 여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른바 된장녀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무슨 재벌처럼 포장한 우리 아빠는 월급쟁이였으며, 남자관계도 담백하다. 나는 '속셈'같은 게 없는 사람이고, 정직하다. 물론 괴팍하고 거친 면이 있어 나에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적어도 그 언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by Alice | 2012/08/11 08:09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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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는 교환교수로 오신 한국분에게 팔렸다. 유학시절 만난 훈남 남편분과 예쁜 두 딸이 있는 그림같은 가정이었다. 이것저것 안쓰는 가구들도 좀 드렸고 밥을 얻어먹었다. 으히히.

2. 하루 또 꽂혀서 인디고펄을 질렀다. 4박5일 온전히 인디고펄에서만 뒹굴기. 작년에는 보수중이었던 레스토랑 블랙진저가 다시 오픈한 모양. 새우랑 수박주스랑 파인애플볶음밥을 질릴때까지 먹을테다. 수영도 잔뜩하고(그래봤자 지쳐서 몇분 못함).. 1년만이네 인디고펄.

3. 인디고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내 개 이름을 내가 좋아하는 술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내 개는 미국 태생, 한국 가정의 개이므로 미들네임으로는 한국 이름을.. 그래서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풀네임은 위스키 깨물 킴 되시겠다.(어렸을때 하도 손을 깨물어서 깨물이가 한국이름이다.) 다음번에는 퍼그를 데려올 생각인데 이미 이름은 정해졌다. 인디고 찌글 킴. 물론 인디고펄을 따서 인디고다. 오스카(오스카 와일드를 땀)로 하려고 했는데 위스키랑 왠지 발음이 비슷해서 개들이 헷갈려 할까봐 인디고!

4. 한동안 음악을 안듣다가 요즘에 다시 듣고있다. 나는 보통 우울한 음악을 듣는데 힘들 때 음악들으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들어도 역시 원래 플레이리스트로 돌아온다. 김광석 김현식 멜로디 가를도. 그리고 가끔 칼라 브루니와 피오나 애플. 그리고 칼라 브루니를 듣다가 그가 나직하게 불러주었던 you belong to me를 듣고 또 멜랑콜리해짐. 내 변하지 않는 여행음악(혼자 하는 여행을 더 쓸쓸하게 만들어주는 리스트)은 호텔 캘리포니아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지만 그 이후로 이 곡도 추가. 언제나 기다린다고, 무엇이든 하다가 힘들면 자기에게 오라고 했지만 그건 그냥 우리가 꾸었던 꿈. 나는 돌아갈 곳이 없네.




5. 어제부터 치즈김밥이랑 쫄면이 너무너무 먹고싶다. 외국에서 먹고싶어지는 건 근사한 한정식이 아니라 꼭 저런 것들이다. 시장 빈대떡이라든지, 스크류바랑 조스바, 떡볶이, 그런 거..

6. 내년에 아빠 환갑이다. 유후인을 보내드릴까 하는데 어떨까 모르겠다.

7. 나는 못되먹어 보이지만 의외로 거절도, 싫은 말도 잘 못한다. 손해를 많이 본다. 약게 사는 건 참 힘들다

by Alice | 2012/08/09 13:38 | 트랙백 | 덧글(6)

결혼은 꿈꾸어 보았지만 결혼식은 꿈꿔보지 않았다.

얼마 전에 주위 사람들과 결혼식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근래 결혼한 여기 지인은 호텔에서 결혼을 했고, 이제 한국에 들어가 내년 초 결혼을 하는 지인은 학교 동문회관을 선택했고, 그러면서 얘기가 시작된거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자리에서 나혼자 여자기 때문에 이야기할 때는 나는 보통 '일반 여성의 의견'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나한테 어떤 결혼식이 하고싶냐고 묻길래 '하기 싫은데'라고 대답했다.

다들 또 놀램.(그만 좀 놀래라.)

진짜 싫다. 한국에서의 그런 결혼식은.. 내가 비꼬아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냥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같다. 정신없고, 형식적이고, 행복하지 않다. 게다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그저 '가줘야되기 때문'에 잔뜩 와서 우걱우걱 밥을 먹고, 신부신랑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친척들이 잔뜩 모여 술을 마시고, 주례선생님은 나나 신랑의 약력을 근사하게 포장해서 얘기할테고, 나는 하얗게 숨구멍을 다 막을 듯한 화장을 하고 얼굴에 경련이라도 난 듯이 미소지으며 다소곳이 있어야될테고, 하여튼 싫은 것 투성이다.

니가 안해봐서 그렇고 사실은 감동스럽단다라고 해봤자 난 어쨌든 그런데 몇천만원 들이기 싫다.(호텔이면 억)

여기 이탈리안 친구 T는 결혼을 이곳 야외에서 했다. 나는 못갔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다들 즐겁고 행복해보인다. 결혼 전에 자기들끼리 결혼식장으로 오는 팻말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고, 하객들에게 줄 선물도 지역 공예가에게 주문해서 직접만든 초콜릿과 손편지를 넣어 포장하고, 친구들은 다 드레스 코드에 맞게 옷을 입고 오고, 사진도 친구들이 찍어주고(너무 자연스럽고 이뻤다. 선글라스를 끼고 서로 키스하는 신랑신부란!),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다들 춤추고..

그런게 행복한 결혼식이지!

내가 하기싫다고 안하게 되는 게 아니겠지만 어쨌든 싫어!싫어!싫다고! 유일하게 하고 싶은 결혼식은 내가 사랑하는 리조트 푸켓의 인디고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들만 모아놓고 하는 것.

라고 내가 얘기하자 오라버니들은 어릴 때 디즈니 만화-공주나오는 것들-같은 그런 거 보면서 결혼식 안 꿈꿔봤냔다.

생각해보니 전혀. 난 어릴때부터 딱히 왕자님이나, 결혼식이나 그런 걸 꿈꿔본 적이 없다. 어릴때부터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나. 우리 막내를 보면 그럴지도..(얘는 아주 어릴 적 내가 초콜릿공장의 비밀을 읽어주자 냉소를 지으면서 그래서 결국 아무말 안하고 입다물고 있으면 공장이 자기 것이 된다는 이야기네.라고 말했다. 다섯살쯤인가. 우리집안 핏줄은 대략..)

게다가 디즈니 공주만화들도 엄마가 많이 안보여줬다. 내가 제일 좋아한 디즈니 만화는 환타지아(클래식 음악에 만화입힌 것)였다. 바비 인형도 안가지고 놀았고. 엄마가 딱히 페미니스트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난 밑의 동생이랑 프로레슬링 인형들-워리어니 헐크호간이니-을 가지고 놀았다. 레슬링 링도 있었다. 열심히 본건 후레쉬맨. 인형놀이는 잘 안하고 동네 풀밭에 가서 방아깨비를 잡고 뒷산에 올라가 놀았다. 시골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아직 방아깨비도 있었고, 뒷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비여성적이 되었나. 백마 탄 왕자님도, 결혼식도 꿈꾸지 않게 되고.

아 백마 탄 왕자님은 아니지만 섹시한 남자는 꿈꾼다. 뱅상 카셀, 아님 설경구.

이상 두서없는 결혼식 이야기.

덧붙이는 건 박자따위 무시하는 패기있는 영원한 나의 섹시남 설경구씨. 선곡도 내 스타일.



by Alice | 2012/08/06 06:05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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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에게 쇼크를 주는 목줄을 계속 해놓고 못짖게하는 것도 안쓰러워서 puppy day care에 하루 갖다 맡겼다. 오늘 하루는 무료체험이라지만 몇 번 더 맡길듯. 젠장. 개한테 이렇게 돈을 쓰다니 패리스 힐튼이라도 된 기분이다.

2. 차는 천불을 내려서 포스팅 하자마자 득달같은 컨택이. 괜히 너무 내린 거 아닌가 해서 아깝다. 어제까진 하루라도 빨리 팔아치우고 싶어했으면서.. 여자의 마음을 갈대여라.

3. 내가 전 기숙사 살 때 RC였던 Y를 만났다. 나이지리아인이다. 그동안 결혼해서 패밀리 하우징의 바로 옆집에 살고있었다.(나는 J와 동거인으로 등록해서 패밀리 하우징에 불법?으로 혼자 살고있다.)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다. 인종이 달라도 인상이 좋은 사람은 좋은 거다. 으흥. 남의 남자지만 Y멋져~

4. 딱히 그렇다한 결심도 없이 시간도 있는데 살이나 빼볼까..하고 다이어트한지 2주째. 나는 혼자 있을 때 다 조리된 음식을 사먹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먹으니 외식안하고 트레이더 조스에 가서 냉동식품만 안사오면 간단히 다이어트. 체중계가 없어서 얼마나 빠졌는지 모르지만 얼마전부터 으슬으슬하고 두통이.. 아 머리아퍼.. 하루종일 뭘 할 수가 없다. 이런 현상은 지나가나?

5. 입양해서 약 17년간 키워온 자식이 싸이코패스의 조짐(아니 진짜로. 진단도 나왔음. 청소년이라 싸이코패스라고 진단명을 확정하지는 않지만 이미 훌륭한 싸이코패스)이 보인다면 과연 그 부모는 파양할 수 있을까요.

6. 이때까지 잘 뿌리지도 않으면서 선물받고, 괜히 면세점에서 하나씩 사고한 향수들을 대거 정리하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향은 풀향 시트론향. 뿌리고 문밖을 나서면 향기가 다 사라진다는 것이 함정. 머스크나 달달한 향은 싫어한다. 하지만 뭐가 어울리는 향인지는 모르겠어.

7. 가끔 다른 이글루스의 글들을 읽는다. 인기글 같은 거. 시대에 뒤처진 나이많은 학삐리가 되기싫은 몸부림. 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모르는 단어가, 아니면 뭔 저런 단어를 만들었나 싶은 단어가.. 멘붕도
한참 고민하다 누가 친절히 멘탈 붕괴라고 써줘서 알았다. 모에는 뭐며, 입진보는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가리키는 뜻이 뭐지? 강남인문좌파는 왜 조합이 그렇게 되는 거며(어떤 사람이 구두 벼룩 올리면서 강남인문좌파 스타일이란다. 아 웃겨. 강남인문좌파는 특정한 옷스타일도 있나? 나는 왜 이럼?) 등등.. 생각이 다 안나지만 뒤떨어지고 있어!!

8. 디파짓 덜 깎이려고 못빼내고 구멍메우는 일을 하고 있다. 못은 그저 그런데 스테이플 건으로 쏜 건 너무 힘들어. 내 힘으로 안되는 것들이 많다. 그래도 난 독립심의 앨리스이므로 오빠들을 부르지 않는다!

9. 오빠들 말인데.. 여기는 공대 우세지역이라 남자들이 엄청나게 득시글거린다. 게다가 한인사회가 비교적 작은 지역이므로 소문이 빨리 돈다. 그 온상은 공대 사람들이 점심을 해결하는 공대의 카페테리아! 내가 입학할 당시도 내 인물평이 그 카페에서 오갔다고 나중에 실토들 하더구만. 한참전에 3남1녀2견의 미래계획을 저녁먹는 자리에서 언급했는데, 그 자리에 없었던 오빠들이 다들 툭툭 튀어나와서 그건 아니래. ㅋㅋ 그리고 진심으로 양육비와 커리어와 폐경기 따위를 설명해가면서 폭풍설교. 입도 싸라. 친정오빠가 스물은 되겠네.

10. 북경에서 재즈바순례하던 기억. 드레스를 입고, 위스키를 마시고, 거기선 병으로 마시는 사람 잘 없어서 뭐를 세팅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사장아저씨에게 콜라랑 우유랑 기본안주랑 뭐 그런거 달라고 요구하고. 공연 중간중간에 연주자들이랑 한잔하고(당시만 해도 병으로 시키면 vip), 같이 갔던 애는 베이스 연주자랑 연애를 하고, 딴애는 옆자리에 앉은 중국배우랑 연애를 하고,(난 안함. 은근히 정숙해요.) 술에 취해서 담배도 못피면서 남이 권하는 시가를 물어보고(다음날 끔찍한 두통으로 응징당함), 서양애들은 일어나 노래하고 춤추고.. 어리고 철없고 치기어린 시절의 이야기. 지금보다 감정의 폭도 컸고, 그만큼 행복하기도 끔찍하기도 했던 시절.

11. 오븐에 기름때 안벗겨져 ㅠㅠ 저거 청소하고 이사나가야 하는데.

by Alice | 2012/08/01 08:42 | 트랙백 | 덧글(2)

안될까..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보통은 외국을 떠돌아다니는 일이고, 안정이라든지 정착이라든지 하는 단어와는 관계가 없는 일들을 해왔고, 아직도 꿈꾸고 있다.

그런 나에게 결혼해서 주부가 된다는 건 아에 옵션축에도 끼지 못했었다.

결혼을 염두에 둔 관계가 있었을 때도, 언제나 결혼생활은 내가 주부가 되는 생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계약을 맺고, 너를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너에게 평생 신실할거지만 나는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살거임..뭐 이런 의미였다.

대학때부터 보통 4개월 정도 되는 방학기간은 해외에 있었고, 휴학하고 반년을 통째로 나가있었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장거리 연애란 별로 나에게는 장애물도,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내 착했던 옛애인들은 내가 외국에 나가있어도 걱정을 했지 불만을 표시하지는 않았고, 내가 없는 동안 딴짓을 할 사람들도 아니었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면 내가 없었던 기간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더욱 애틋하고 뜨거운 관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살아온지라 아직까지 주부의 삶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더욱 오지로 가기 전인 요즘, 주부로 사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일이 힘들어서 취집을 해야겠다거나, 돈많은 남자를 잡아서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맘이 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그냥, 주부로 사는 것도 행복할까..

나는 요리도, 청소도 모든 것이 서투르지만 눈치가 좋고 빨리 배우는 편이고, 책임감도 강하고, 집요한 구석도 있고 하니 집안일이야 시간이 지날 수록 익숙해지겠지. 나 혼자 살때는 절대 하지않을 매일 뭔가 맛있는 걸 해주려고 고민하고, 몸에 좋은 재료를 사고.. 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

또 나는 애정이 넘치고, 이때까지 장기간 연애를 한 경험을 되짚어볼 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을 여전히 사랑했으니 시간이 많이많이 지나도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들도 좋아해. 열살 차이나는 막내를 내가 얼마나 이뻐하면서 거의 키우다시피 했는지. 아직도 3남 1녀(진심입니다)를 꿈꾸는 나니까 아이들에게도 애정을 듬뿍 쏟아줄 수 있을 거야.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니까 아이들도 따라서 책을 읽겠지. 언제나 잘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아이들 이야기도 잘 들어줄거야.

인테리어에 소질도 있고, 안목도 있어. 내 집은 언제나 심플하고 세련되게 꾸몄고, 남들도 부러워했어. 그러니까 집이 좁든 넓든 예쁘게 꾸미고 살 수 있을 거야.

결혼해도 예쁠 수 있을 것 같아. 난 내가 남에게 못생겨 보이는 걸 싫어하니까. 그리고 적은 돈으로도 잘 꾸미고 다니니까. 주름도 없고 머리도 아직 찰랑찰랑. 살이 쉽게 찌는 편이지만 남편이 매일 곁에 있으면 긴장해서 좀 덜찌지 않을까. 결혼해도 지금처럼 편하지만 예쁜 원피스를 입고, 예쁜 슬립을 입고 자고, 가끔 예쁜 드레스를 입고 힐을 신고 남편 팔짱을 끼고 데이트를 하고 싶어.

결혼은 돈이 중요하다지만, 나한테는 언제나 나를 안쓰러워 해서 서포트해 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부모님도 계시고, 나도 돈을 많이 벌 전공은 아니지만 어디 연구원이나 강의 나가면 생활비 정도야 벌어올테고.. 그걸로 안되나.

아마도 안 되겠지.

집안일에 치이고, 내 외모따위 돌볼 시간은 없고, 짜증날 일이 태산이고, 이래저래 돈에 치이는 날들이겠지.(주위 주부님들의 조언)

결혼한 사람들이 들으면 콧웃음칠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그냥 이런 생각을 불현듯 해보았다는 이야기다.




by Alice | 2012/07/31 09:16 | 트랙백 | 덧글(2)

기록

1. 음식쓰레기를 뒷뜰에다 내어놓고 갖다 버리는 걸 잊었더니 부스럭 소리가.. 창을 통해 내다보니 스컹크가 방문하셨다. 조용히 불을 끄고 커튼을 닫았다. 스컹크님께서 부디 먹을 것만 먹고, 방구 안뀌고 돌아가주셨으면. 스컹크 시커먼게 무섭게 생겼다. 절대로 이쁜 동물이 아니다.

2.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2년간 친하게 지낸 포닥 오빠도 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에서 오퍼를 받았다. 내가 가지 않기로 선택한 길.. 하지만 교수직에 따라오는 '안정'은 부럽다.   

3. 개가 짖어서 스태프들에게 경고받았다. 경고 더받으면 쫓겨난다. 오늘 나가서 bark control하는 목줄을 사왔다. 전기적으로 쇼크를 주는 장치다. 아프지않고 놀랄 뿐이라고 하지만 오늘 처음 써봤는데 소스라치게 놀라는 개를 보니까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지금은 나한테 삐지고 놀라서 옆에 붙어있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미안해..

4. 구직했던 곳 중의 하나에서 어제 밤에 연락이 와서 그곳이 얼마나 사정이 열악하고 치안이 안좋은지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했다. 게다가 나는 남자도 아니고, overqualified라 괜찮겠냔다. 아마도 이후 혹시 문제가 생기면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다고 하려는 것같다. 어쨌든. 잘하면 아직도 식인종이 있다는 태평양의 섬나라에서 꽤 오래 지낼 것 같다.

5. 얼마전에 내 모든 성적 판타지가 압축된 듯한 꿈을 꾸었다. 상대방은 로앤오더의 스태이블러 형사. 내가 그런 타입인 줄 나도 몰랐는 걸. 과다한 근육질은 싫어한다고 생각했든데 왜???

6. 요즘 다들 인턴가고, 한국가고 그래서 저녁을 친한 오빠 하나랑 계속 같이 먹는다. 그런데 자꾸 자기가 산다. 나도 안마시는 커피라도 사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만 역시 밥값이 훨씬 비싸다. 내가 계속 더치하려는데 오빠한텐 좀 얻어먹어도 된다면서 돈을 못내게 막는다. 나는 누구한테 얻어먹는 성격이 아니라 뭔가 불편하다. 같이 저녁먹자고 이야기하면 사달라는 소리같아서 말을 못꺼내겠다 점점.

7. 이란 학생들의 페르시안 나이트에서 먹은 콩커리랑 난이 잊혀지지 않아서 인도음식점에 갔는데 콩커리가 그때처럼 맛있지 않다. 이란친구한테 그 때 그 음식 어디서 주문한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만든 거란다. 그럼 못먹겠네.. 진짜 맛있었는데 ㅠㅠ

8. 차가 빨리 팔려야 될텐데.. 2011년형에다 만마일밖에 안뛰어서 중고차치고는 고액이다. 차 상태가 깨끗하고 새것인 게 오히려 더 안팔리는 요인일수도..

9. 아 놔 스컹크 아직도 안갔다. 무서워..


by Alice | 2012/07/27 14:07 | 트랙백 | 덧글(2)

팔불출 어게인

끊임없이 장난을 치고, 사고를 치고, 놀아달라 조르고, 키스를 하고, 꼬리를 흔들고, 붙어서 자고

나를 정신없게 만들고, 깊은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않고

그렇게 나를 조금씩 나아지게 만드는 나의 작은 위안










by Alice | 2012/07/26 10:16 | 트랙백

일상 기록

1. 물건들을 차례차례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려서 팔아치우고 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오는 건 영 스트레스다. 왠지 그 시간에는 집도 깔끔하게 하고 있어야 할 것 같고, 옷도 좀 갖춰입고 있어야 할 것 같고. 가구들은 왠만큼 팔렸고 큼지막한 건 티비랑 매트리스, 소파, 테이블, 청소기 정도이다. 책도 아마존에 올려서 팔고 있는데 포장하고, 우체국에 가는 수고에 비해 중고책 값은 정말 푼돈이지만 책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습관은 여전해서 버리느니 남들에게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최저가로 팔고 있다.

2. 나와 정치관이나 종교관이나 세계관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참된 지식인의 자세이건만 속으로 욱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양이 더 필요해.

3. 개 발톱을 깎을 때마다 한바탕 전쟁이다. 평소에는 물지 않는데 발톱 깎으려 들때마다 물고 할퀸다. 오늘 아침에도 발톱깎기 시도하다가 한 발만 겨우 깎고는 둘 다 마음이 상해서 토라져있다. 나는 일층에, 위스키는 이층에.. 나쁜놈.

4. 학교 씨어터에서 매주 지나간 영화들을 상영해준다. 지지난 주에는 디즈니 앨리스를 해줬는데 지나고서야 알았다. ㅠㅠ (앨리스와 오즈, 피터팬을 매우 좋아함. 제일 좋아하는 건 앨리스) 이번주는 캐빈 인더 우즈. 재밌다고 들었는데 가볼까나.

5. 얼마 전에 과거 여행동료에 대해 글을 썼는데 마침 오늘 그 사람한테서 메일이 와서 반가웠다. 미국에 출장온다고 볼 수 있냐고. 하지만 뉴욕에 간다니 안될듯.

6. 나는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가끔 생판 남에게 이야기하거나, 뭔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할 때-물건살때나 세미나 발표..-는 좀 더 하이톤(그래봤자 일반인보다는 저음)이 나오는데 나에게 평소에도 그 톤으로 이야기하지 그러냐고 말한 사람이 이때까지 딱 둘 있었다. 좀 더 하이톤쪽이 여성스럽고 이쁘다고. 개인적인 의견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그 두명이 내가 만난 인간 중 가장 뭣도 아니면서 마초근성에 쩔어있는 인간 1, 2위라면 우연일까.

7. 은퇴때까지 아주아주 후진국에 보육원 하나를 지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으고 싶다. 그리고 내 자식들이 다 크고, 더 이상 경제전선(?)에서 분투하기 힘들어질 나이가 되면 마음씨 좋은 할머니가 되어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집과 음식과 옷과, 그리고 절대적인 사랑을 주면서 살고 싶다.

8. 팔려는 책의 책장 사이에서 옛 애인의 편지가 나와서 옛사람들을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았다. 나는 극단적으로 기억을 안하는 쪽이라 이제 얼굴도, 같이 나눈 대화도, 데이트들도, 느꼈던 느낌도 생각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름과 나이와 직업만이 대략적으로 기억날 뿐..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이도 제일 적었던 사람과 많았던 사람이 열 서너살 차이는 나고 직업도 학생부터 사짜 직업들, 사업하는 사람, 직업군인도 있었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우리는 좋았었지요.

9. 우리동네 일식집에서 파는 그 부드러운 고로케 먹고싶다. 어떻게 속을 크림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만들지? 8불인데 손가락만한 거 두개밖에 안준다.ㅠㅠ 내 고로케 타령에 주위 사람들이 몇번 만들어줬는데 그렇게 부드럽게는 못하더라. 그나마 나한테 음식을 공급하던 이들이 지금 주변에 없다. 그래서 난 인스턴트면+밥, 김치 콤보로 하루 두 끼를 연명하고 있다. 더이상 아무것도 안 사들이려니 이모양이다. 근데 왜 살은 안빠져?

10. 여행가고싶다. 여행.. 내 대망의 실크로드 루트, 터키, 동유럽..

by Alice | 2012/07/23 06:19 | 트랙백

개와 동침하기

예전에 남자를 사귈 때는 그랬다.

함께 보내는 밤이 많아질수록 같이 잘 때 서로 편안한 자세를 찾게 되었다.

나는 예민한 편이라 남이랑, 심지어 엄마랑도 같이 자는 걸 꺼리는 편인데 별 수 있나 애인인데..

그래서 남자친구들과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낸 뒤, 내 예민함과 동침의 필요성 사이의 절충점-신경을 거슬리지 않고 잘 수 있는 자세-을 찾게 된다 언제나.

요즘 나의 동침상대는 내 개인데(동정하지 말아요!) 처음에는 개와 자는 것도 매우 불편했었다.

개는 보통 좁은 곳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 내 다리 사이를 선호한다.

그러면 나는 개가 조금 잠든 뒤, 다리를 살짝 빼내어 구석에 웅크리고 자고는 했다.

그런데 어제..

한시간의 폭풍산책을 마치고 돌아온터라(평소엔 십분도 안움직임. 나한테 이정도면 마라톤) 둘 다 지쳐있어서 저녁부터 자기 시작해서 이제 막 깼다.

그 와중에도 개는 내 팔을 베고 옆구리에 딱 붙어서 자고, 나도 거리낌없이 편안히 잤다.

이제 우리가 같이 산지 5개월째, 편안한 자세를 찾은 애인과 같아진 것이다.(동정하지 말라구!)

허허허..개와 그런 관계가 될 줄이야.

    

by Alice | 2012/07/19 23:45 | 트랙백

나른한 여자


오늘 성별이 남자인 외국인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내 전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고(둘은 전남친이 미국에 와서 머물렀을 때 파티에서 본 사이), 그러다가 내가 어떤 종류의 남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담으로 이어졌다.

그 친구 왈..

너는 이 동네에서는 어필이 안된다.

우리 동네는 핫팬츠에 탑을 입고 러닝하거나 비치발리볼 하는 여자애들이 대표적인 여자들의 유형이잖냐. 여기선 스포티하고 활력있는 여자가 대세다. 탠도 좀 되어있고. 여기서는 넌 마이너 취향이다.

그렇다고 아시안 남자애들한테도 어필하지 못할 거다.

너는 순종적이지도 않고, 술도 많이 마시고, 유머감각이 독특한 데가 있기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에게도 어필하지 못한다.

너는 종교에 대해서 삐딱하니까. 미국인들 대부분 크리스챤이잖어.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너 스스로 carnivore이라고 말하고 다니자나. 고기는 레어라며. 채식주의자는 너 싫어할걸.



야! 그럼 누가 남아!!라고 말하니까 마지못해 앞의 비매력 분석보다 훨씬 간단한 매력분석을 해주었다.

너는 말야. 나른하고 퇴폐적인 매력이 있어..(한글로 알맞게 번역하기도 힘들다) 어 왜 중세 유럽의 여자 누드화에 보면 왜 하얗고 포동하고 그런 여자가 나른하게 누워있잖아. 너는 딱 그런 그림의 여자같아. 오리엔탈 스타일로 이야기하지면 왜 술탄의 하렘에서 노예들이 들고있는 부채밑에서 포도먹고 있는 비단옷 입은 여자. 포도를 먹다가 시면 저 놈의 목을 쳐라라고 심플하게 이야기하겠지.
 
야! 너 지금 내가 그냥 하얗고 안말랐다고 그러는 거잖아!!

아냐. 봐봐. 너는 왜 잘 나가지도 않고, 남들한테 연락도 잘 안하고, 운동도 안하고 혼자서 청결한 집안에서 몸에 안좋은 음식이랑 술들을 먹으면서(집에서 술 잘 안먹거든!) 대부분을 침대위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일을 하면서 보내잖아(야! 나도 공부한다고!! 침대위에서! 너처럼 실험실 나가야 공부하는 거냐!) 맛있는거랑 술 있으면 냐옹냐옹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만족하잖아. 왠지 그 누드화의 여자들이 딱 너같을 거 같은 느낌이야. 물론 하얗기도 하고, 몸매도 좀 중세 스타일..(야!!)

넌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완전 어필할거야. 니가 하렘에 있었으면 술탄의 최고 애첩이 됐을걸.

아.. 그래..

난 이제 중세 누드화를 좋아하는 남자를 찾으면 되겠네. 아님 하렘취향(?)인 남자.

그런 남자는 어디서 찾니?

나야 모르지. 근데 희망을 버리지마. 초고도비만인 여자만 좋아하는 남자도 있고, 불구인 여자만 좋아하는 남자도 있다더라. 어디 너 좋아하는 남자 없겠냐.

아 고맙네. 아주 희망적이다.

역시 우리는 좋은 친구.







by Alice | 2012/07/18 13:08 | 트랙백 | 덧글(4)

버리기

이 곳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눈떠서는 집의 가구들을 크레이그리스트에 내놓았다. 퀸 사이즈 침대, 매트리스, 커피테이블, 소파, 식탁과 의자, 네개의 책장, 책상 두개, 크고 작은 의자 세개, 서랍장 두개, 전신거울, 장식장, 신발장...

나는 이재에 밝은 사람이 아니고, 돈에 신경쓰는 걸 싫어하는지라 다 반값에 내놓았더니 메일이 무지하게 왔다. 대략 반 정도가 팔렸다. 내일 와서 물건들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저 가구들에 들어있는 내 물건들을 치워야했다.

먼저 책을 치웠다. 문고판 책들과 제본뜬 책들, 컴퓨터 검색이 되는 한어대사전은 버리기로 했다. 나는 한번도 책을 버려본 적이 없다. 미국에 올때도 거금을 들여서 책들을 다 운송해왔다.

그런데 고민도 안되더라.

빼곡한 책들을 책장에서 빼어 뒷뜰에 내어놓으면서 나는 슬며시 미소가 나오기까지 했다.

책이야말로 나의 공부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을 대변하는 물건이다. 읽고 싶지도 않은데 혹시나 나중에 필요할까봐 악착같이 모으고, 사고, 물려받고.. 그리고는 그 책이 주는 부담에 짓눌려 더욱 공부에 염증을 느끼고.. 이런 바보같은 일이 있을까..

영문판 책들은 아마존에 다 내놓았다. 끔찍히도 싫어하는 아날학파니 토마스 쿤이니 미셀 푸코니 이런 책들을 나는 왜 버리지도 팔지도 않고 끝까지 끌어안고 있었을까..

한국어 책들은 좀 아깝다. 좋은 책들이 많다. 심지어 로마인이야기 전권도 있다.  한국에 가면 물려줄 후배들이 있지만 한국까지 들고가려면 거금이 든다. 그렇다고 여기에 역사나 인류학이나 고고학책을 읽고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아직은 문고판도 제본도 아닌 멋진 양장본을 미련없이 버릴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일단 집안에 쌓아두었다.

대한화사전은 J에게 갈거다. 25사는 아깝다. 누구줘야하나. 사서삼경은 내가 가지고 있기로 했다.

서랍 정리는 더 혼돈이다. 옷이 이민가방을 최대로 늘려서도 3개다. 사실 내가 입는 옷은 몇몇에 불과한데 이 옷들은 다 뭔가.

잠옷을 얼마나 갈아입는다고 파자마며 슬립이 열개도 넘고, 평소에 옷감이 부드럽지 않다며 잘 입지도 않는 레이스달린 화려한 속옷세트도 엄청 많고, 치지도 않는 골프웨어도 잔뜩, 웬만해서는 입지않는 추리닝이나 티셔츠도 이종류 저종류, 스타킹이나 양말 신는 거 싫어하면서 스타킹도 무늬다르고 색깔 다른 것들이 한가득이다. 가방도 딱 두개만 들고다니는데 이것저것 종류별로 있고, 쓰지도 않는 모자도 잔뜩 있고, 비키니는 왜 일곱개가 있으며, 머플러는 서랍 가득..

언젠가는 입겠지라고 2년전에 미국으로 싸들고 왔지만 대부분 하나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옷들을 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화장품도 마찬가지.. 원체 화장이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라 색조화장은 거의 하지 않으면서 이쁜 색깔의 아이섀도우가 잔뜩 쌓여있고, 그저 색이 이쁘다고 샀던 샤넬이며 바비브라운이며 맥의 립스틱들도 엄청나다. 하지만 나는 입술에 무언가를 칠하는 건 일년에 한두번(아마도 할로윈 분장할때)뿐이다. 가방에 화장품을 아무것도 들고다니지 않는 털털한건지 용감한건지 왔다갔다하는 내가 화장품은 왜 이렇게 많아.

게다가 머리도 제대로 안말리면서 여러 종류의 고데기, 몸에 뭐 바르는 것 싫어하면서 각종 향의 바디로션, 챙겨먹지도 않으면서 이런저런 영양제들이 쏟아지고

또 게다가 토스터, 믹서, 소다기계, 커피포트, 티비, 낚시대, 크리스마스트리, 그릴 두 종류, 도자기들, 꽃병들, 전자레인지도 두개, 공구함, 쓰지않는 개용품, 와인과 샴페인글라스, 청소기들도 다 팔아야 한다.

난 정말 군더더기로만 이루어진 인간같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서 생활은 메마르고 엉망이다. 아무것도 쓰지않는다. 저런 물건들을 이용해서 더 괜찮은 생활을 해봐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않았다. 어리석다.

다 헐값에 팔아없애기로 했다. 매트리스와 차만 끝까지 남겨두고 최대한 팔아야지.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 없애버리고 싶다.

by Alice | 2012/07/16 16:55 | 트랙백

힘들다

진정으로 위로가 필요해지는 밤이다.

그냥 체면차릴 필요가 없는 누군가의 토닥임을 받으며 펑펑 울고 싶다.

by Alice | 2012/07/13 16:17 | 트랙백 | 덧글(6)

기록

1. 미국으로 돌아왔다. 일단 의도했던 일들은 잘 마쳤지만 막상 마음이 흔들린다. 제일 큰 요인은 은사님의 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다. 다음이 내가 지원한 단체의 종교색이다.

2.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니 이전에는 무심히 여겼던 집의 곳곳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우리집은 방이 네개인데 크기가 비슷한 두개의 방이 현관 앞에 위치해있고 부엌과 거실을 지나 가장 큰 안방과 제일 작은 방이 마주해있다.

원래 나와 밑의 동생이 현관 앞 방들을 차지했고, 작은 방이 막내거였는데 이제 막내가 예전 내방을 쓰고 나는 구석방으로 밀려났다. 그 방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예전에 내가 막내를 위해 붙여준 플라스틱 야광별들로 만든 은하수가 보였다. 180의 목표치에 빨간 선을 그어놓고 매달 막내의 키를 표시하던 벽도, 막내가 여기저기 포켓몬 스티커를 붙여놓은 것도 그대로다.

하지만 이제 그렇게 귀엽던 막내는 대학신입생이 되어 청춘을 불사르고 있고 키는 176에서 멈춘지 오래다.

3. 가족들은 내 개에 정이 듬뿍 들었다. 우리 가족이 가진 첫 애완견이라 다들 애교많은 개한테 혼을 쏙 빼앗겼다. 그래서 우린 다함께 애견 펜션에 놀러도 갔다왔다. 거기서 이넘이 한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하는 걸 배워와서는 여기저기 찍~ 그래서 어쩔수없이 내일 중성화수술 예약했다. 미안하지만 매일 이불빨래를 할 수는 없지.

4. 난 선물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빈대붙으려는 사람들을 눈치채면 일차적으로 당황하고 다음에는 분노한다. 빈대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고등학교때 나한테 빈대붙는 애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영악한 애였다. 우리 동네에 사는 애가 아니었는데 위장전입을 해서 우리 학교에 입학했고, 부잣집 남자애들을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꼬셨으며, 나한테 친한척
해서 학생회도 따라들어왔다.

매일 나에게 뭘 얻어먹었다. 내 친구들이 그 애가 나를 이용해먹는 거라고 했을 때도 나는 안믿었는데 그 애가 자기 돈으로는 학생회'남자'후배들에게 통크게 굴고 나한테는 매일 얻어먹는 걸 알았을 때는 정말 화가났다. 별 돈 아니지만 그런건 사람을 너무 치졸하게 만든다. 내 다른 친구들은 걔를 결국 너무너무 싫어해서 걔 주소지를 찾아가 걔가 반지하에 산다는 걸 폭로했고 아이들은 그걸로오래 뒷얘기를 했다.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해서 끼지 않았지만 막지도 않았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 있었는데..

5. 위의 사건을 생각하다 또 생각난 사건이 있는데, 저렇게 집요하게 싫어하는 애가 가난하다는 걸 폭로한 그룹은 자기가 싫어하는 애가 수학여행때 같은 방이 되었다고 그 애를 수면제를 먹여서 재웠다. 부잣집 애들이 많이오는 학교였고 전반적인 수준이 높다고들 했지만 아이들은 때때로 매우 잔인해졌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좋았던 적이, 그때도 그 이후로도 한번도 없다. 나는 내 나름의 옳고그름의 기준이 지나치게 분명한 애였고(지금은 많이 무뎌졌지만) 나에게 부조리가 만연하는 학교는 너무나 폭력적이었다.

6. 나와 박사과정 같이 들어온 오라버니가 결혼을 했다. 새신부를 결혼식에서 보고, 오늘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었다.  둘이 닭살이기는 하지만 신혼이니 얼마든지 봐줄 수 있다. 나는 여자들과의 관계에 서투르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 쭉 남녀공학을 다녔고, 남자친구들과 지내온 나는 여자들의 복잡미묘한 관계와 대화방식을 싫어하고 능숙하지도 않다. 새신부는 눈웃음이 이쁜 참한 아가씨였다. 나는 여느때처럼 시니컬하고 마초적(이라고 남들이 말하는)인 말투로 말하는데 '그러셨어요, 언니?' '어머, 기분 나쁘셨겠다.' 등 굉장히 여성적인 리액션을 굉장히 적극적으로 해주었다. 처음보는 무서운 언니에게 잘보이려고 했는지 원래 그런 사근사근한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곡을 찌르는 유머와 비판능력를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한다. 사실 저런 리액션을 하면 나는 좀 당황한다.

허허.. 적응되겠지..

7. 나와 지금은 매우 좋지않은 관계, 아니 완전히 관계가 단절된 사람이 있다. 걔와의 대화는 매우 즐거웠다. 교양도 있었으며, 유머러스했다. 내 말을 잘 이해했고, 잘 들어주었다. 글은 더욱 그러했다. 나는 글이나 말이나 모두 서투르다. 둘 다 결론만 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는 긴 글을 조리있고 매끄럽게 쓰는 사람이었다. 글을 통해 보는 그는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요즘 자주 보는 블로그의 주인이 되시는 분은 글투가 그 애와 매우 비슷하다. 인문학으로 10년째 먹고사는 내가 봐도 잘 쓰는 글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어떤 사람인지 길고 처참했던 과정을 통해 알아버렸다. 매우 위선적이며 자아도취적인 인간이었다. 무례하며 오만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의 성격이 타인과는 다른 뛰어난 자신의 자질의 일부인마냥 포장했다. 그러면서도 겸손을 가장하는 것 또한 그의 버릇이다. 어쨌든 내가 만난 최악의 인간이었다. 남들이 그런 그애의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최악이다. 그래서 나는 그 블로그의 주인분과 그 애가 닮은 면이 글에 나타날 때마다 그 글쓴 분의 진짜 성격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분은 진짜 좋은 분일 거다. 나는 그 분의 글에 공감할 때도 많고 포스팅된 음악이나 영화나 책이나 그런 것들도 나와 취향이 맞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 애와 나도 그랬다. 만날 일이 없는 관계다. 좋은 글을 읽고 즐기면 된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 애가 상기된다. 그 애가 나에게 끼친 또 하나의 해악이다. 정말 싫다.

8. 나는 요리뿐 아니라 모든 집안일을 싫어하는 걸 깨달았다. 청소, 설거지, 빨래 모두 너무너무 싫다. 하지만 정원 가꾸기나 가구조립이나 인테리어하는 건 좋아한다. 남성적인건가? 요즘 제일 하고싶은 건 가구만드는 거다. 아.. 처음부터 내가 온전히 만든 원목 가구들이 가지고 싶다.

9. 원목가구 얘기가 나와서 하나 더. 내가 안목, 아니 취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다. 어쨌든 취향이 있는 분야와 전혀없는 분야가 있다. 요즘 가구들을 보는 취미가 생기면서 느낀 건데 내가 취향이 있는 건 가구, 책, 음악, 옷, 파스타, 악세서리. 없는 건 가방, 신발, 와인등 주류(뭐든 좋아함)..

10. 빅세일 때 샀던 필립림의 드레스가 도착했다. 평소에 비싼 옷을 안사는 편이다. 에스닉하고 빈티지한 스타일들을 좋아해서 대충 레이어드해서 입고 다닌다. 하지만 필립림의 드레스는 언제나 이뻐보여서 훅 질렀다. 복숭아빛의 심플한 원피스인데 내 피부색이랑 잘 어울리고 이쁘다. 하지만 이제 애인도 없는데 어디에 입고 나가나.

by Alice | 2012/07/11 15:19 | 트랙백 | 덧글(1)

즐거운 소소한 일들

1. 강아지랑 산책을 나갔다. 아홉살, 열살 가량 되어보이는 남자에 셋이 윗옷을 벗어들고 머리위에다 휘두르면서 'we are sexy, and we know it'이라고 노래를 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야야야!! 쪼그만 것들이!! ㅋㅋ 웃기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보고있으려는데, 그 중 한 애의 여동생인 듯한 애가 집에서 나오다가 놀라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이 섹시가이들은 갑자기 순한 양이 되어서 여자애를 달래보려고 쩔쩔매드라. 귀여운 것들..

2. 이번주에 새로운 직업을 위한 면접을 보느라 한국에 잠깐 간다. 개도 데리고 가려고 기내용 케이지를 사고 인심을 써서 삑삑 소리나는 고무오리도 사줬는데 이 겁쟁이가 그 오리가 무서워서 침실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그래서 오리를 내 잠옷허리끈으로 묶어서 문고리에 묶어놨더니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들어온다. 오리를 흘낏흘낏 쳐다보면서..

3. 어이가 없는 건 고무오리를 무서워하는 이 개가 사람과 개에 대해서는 아무런 무서움이 없다는 거다. 광견병 백신 증명서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어마어마한 크기의 핏불이 들어왔다. 이 놈은 발 하나가 자기 얼굴만한 핏불한테 반갑다고 달려들어서는 꼬리를 흔들며 뽀뽀를, 정확히는 침으로 도배하는 짓을 한다. 점잖은 핏불은 가만히 있는데, 나는 혹시나 핏불이 귀찮다고 앙 물어버릴까봐 간이 콩알만해졌다.

4. 어제 아이들 기말고사 감독을 보고왔다. 그 와중에도 나름 머리를 굴리는 애들은 시험지 제출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많은 걸 이 수업에서 얻었는지, 내 수업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부를 한다. 야! 그런다고 점수 더 안줘!!

by Alice | 2012/06/14 11:01 | 트랙백 | 덧글(2)

강한 사람인 것은 때로는 피곤하고 외로워


나는 위악의 인간이다.
내 말투도 차림새도 평범치 않고, 어떠한 도발도 맞받아치며, 남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고, 절대로 나약해보이지 않는다.
위악을 떨어서 그런면이 더 도드라지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나는 이성적이고, 공정하고, 터프한 사람이다.

오늘은 힘든 날이었다. 지금이 새벽 여섯시 이십분이다. 페이퍼 마감날이라 30페이지째 휘갈기고 있다.
집에서 밤새 공부하며 불쌍한 내 개가 편히 자지도 못하고 내 옆에서 선잠을 자서, 도서관의 24시간 구역에 와있다.
그리고 여기서 같은 과 동료를 만났다. 친하지는 않은데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미국애들 다 반갑게 인사하지 뭐.

어쨌든 조금전에 너무 힘들고, 기분도 별로고 해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얘가 와서 말을 걸었다.

괜찮아?

누구나 아무에게나 해줄 수 있는 짧은 말이었지만 천성이 착한 동료의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 눈빛, 뭔가 안심이 되는 듬직한 덩치, 그리고 밤을 샌 나의 어지러운 머릿속, 피로한 육체가 더해져 그 말이 그렇게 북받쳤다.

아니야 나 안 괜찮아.

정말 안 괜찮아.

힘들어.

울고 싶어.

나는 왜 이렇게 엉망이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얼마나 바보인지 한번 들어볼래.

나 좀 쓰다듬어 줘.

그만하고 싶어.

안 괜찮아. 안 괜찮아. 안 괜찮아.




하지만 현실은 쿨한 미소와, I'm okay..


by Alice | 2012/06/12 22:29 | 트랙백 | 덧글(4)

여행과 사람의 기억

내 예전 포스트를 읽다가 내 예전 여행동료에 대한 언급을 읽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나는 동남아를 여행하고 있었다. 나는 자부심의 오지여행가이므로 방콕이나 푸켓 또는 앙코르와트같은 유명한 관광지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콕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라오스로 직행한 뒤, 라오스의 여행책에도 안나오는 장소들을 길에서 만난 다른 여행자들, 또는 현지인들의 정보를 귀동냥해가며 한달쯤 여행했다.

아 그런데 문제는 음식. 가는 곳들이 관광지가 아니라 현지인들을 대상으로한 노점에서 대부분 끼니를 해결했는데 제일 만만한 것이 닭칼국수(비슷한 뭔가)였다. 한달쯤 칼국수를 먹다보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북부로 나왔다. 태국은 우리는 후지다고 보지만 나름 그 동네 맹주다. 세븐일레븐도 많다. 태국에서 문명을 느낀건 좋은데 일주일도 안되어서 또 질렸다. 관광지 싫다. 오지 트래킹이라고 해서 따라가 봤는데, 이건 뭐, 서양관광객들이 '오지'를 느꼈다고 집에가서 사진 늘어놓고 자랑할 수 있게 꾸며놓은 번지르르한 코스였다.

그래서 또 탈출했다. 어디로? 미얀마로.. 미얀마는 그때만 해도 한글로 된 변변한 여행책자 하나없는 곳이었다. 아웅산 수치여사 기억나는가? 독재국가고 폐쇄국가였다. 미얀마에 가는 외국인은 아주 드물었다. 미얀마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하고 론니플래닛 미얀마 영문판을 샀다.

비행기는 당장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만큼 후지고 작았다. 게이트가 열리길 기다리면서 열심히 미얀마어로 가격깎는 연습을 하고있는데 서양인 하나가 현지인들 사이에 껴있었다. 론니 플래닛도 들고 있었다. 용감한 코쟁이군이라고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내렸다. 출국장을 나서려는데 그 코쟁이가 다가와서 여행객이냐고 물었다. 자기랑 숙소까지 택시를 쉐어하지 않겠냔다. 땡큐다 당연히. 아무리 내가 용맹무쌍해도 외지에서 여자혼자 택시타는 건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동료가 되었다. 정말 숙소건 어디건 외국인이 우리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날 저녁을 같이 먹었고, 맥주를 한잔 했으며, 그 다음날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절을, 호수를, 시장을 구경하러 다녔고 여행동료는 서로 부딪히는 일이 많은데 우리는 은근히 패턴이 잘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둘 다 사진을 별로 많이 찍지 않았고, 서둘러서 돌아다니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곳에는 눌러앉아 허송세월하기를 좋아했으며, 끼니를 꼭꼭 챙겨먹지 않아도 상관없어했고, 현지인들과, 특히 아이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현지음식에 거리낌이 없었고, 가끔 고산족들이 아편이나 정체불명의 이파리들을 팔려고 했지만 둘 다 약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담배도 안했고, 술은 좋아했다. 나는 현지인들에게 무례하거나 자기들의 기준을 들이대 까탈스럽게 구는 서양 여행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는 그렇지도 않았다.

그는 스위스인이었다. 뭔가 경제관련 공무원이었고 일년을 휴직중이었다. 그의 첫번째 배낭여행이었고, 첫 아시아 여행이었다. 태국에서 여행 에이전시에서 주선하는 투어들에 질려서 미얀마행을 결정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겁먹어있었고, 공항에서 론니 플래닛을 들고있는 나를 보고 Thanks, god이라고 생각했으며, 택시를 탈 때 끈질기게 흥정하는 나를 보고 다시 신에게 감사했단다.

그래서 이 초보여행자님은 미얀마 첫 도시에서 진정한 배낭여행을 맛보고는 녹아버렸다. 그가 론니 플래닛으로 열심히 짜놓은 루트는 버리고, 아무렇게나 발닿는대로 돌아다니는 나를 한달 동안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는 트럭의 지붕에 올라타고 이동을 해봤으며, 이상한 곳에 떨어져 노숙도 해봤고, 아직도 궁금한 이유로 차가 끊긴 마을에서 며칠동안 하릴없이 머물기도 했다. 둘 다 차례로 배탈이 나서 고생했고, 그는 한 마을에서는 동네 아이들이랑 너무 친해져서 그곳을 떠날때 훌쩍거리기도 했다.

우리 둘은 즐거웠다. 처음에는 각방을 쓰던 우리는 곧 비용절감을 위해 트윈룸(더블룸 아님)을 쉐어하기 시작했다. 여행은 행복했고, 둘 다 관계가 섹슈얼해지면 그 멋진 여행이 끈적끈적해진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선은 지켜졌다. 그는 젠틀했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에는 밖이 아무리 추워도 방밖으로 나가있었으며, 뜨거운 물이 안나오는 곳에서는 곧죽어도 머리는 감아야하는 나를 위해 머리 감는 동안 물을 부어주었다. 내 엉터리 영어를 잘도 알아듣기도 했다. 나는 침낭이나 방한자켓이 없었는데 미얀마는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곧 그의 침낭과 그의 방한자켓은 나에게 양보되었다. 배탈이 났을 때는, 둘 다 열심히 서로 간호해주었고, 밤에는 언제나 맥주를 마시며 그 날 여행했던 곳들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여행지가 얼마나 인간관계에 환상적인 요소를 추가하는지 안다. 여행지에서의 로맨틱한 만남은 말 그대로 허상이다. 가끔 서로가 무언가를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너무 추워서 그가 내 손을 잡아 녹여주었을 때나, 아파서 누워있는 나의 머리를 짚을 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둘의 입에서 함께 감탄사가 나왔을 때, 둘 중 하나가 근사한 숙소를 찾아내거나, 흥정을 잘하거나 해서 함께 좋아하며 하이파이브를 할 때.. 그는 나에게 감정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만들어진 감정'이다. 그는 여행 초보라 그 감정에 취했고, 나는 여행 고수라 그 감정의 속성을 알았다. 그런 일은 흔히 벌어지고, 아무런 미래도 보장할 수 없는 감정이며, 또 현실로 복귀하면 쉽게 잊혀진다.

우리는 한 달 후 방콕으로 돌아왔다. 나는 방학이 끝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그의 예정은 인도, 중동같은 데를 거쳐 서진하여 스위스까지 돌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서 깨지 못하고 애정을 애걸했으며 나와 함께 한국으로 가서 그의 남은 휴직기간를 보내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 다음은? 

모든 것을 다 쓸 수는 없다. 지나가면 다 별것이 아닌 그 달콤함과 헤어질때의 슬픔과, 짧은 일탈과 그 후의 허무함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순간을 공유했다.

결국 방콕서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조금 찔끔했고, 그는 많이 울었다. 그는 그 후에 이어진 여행 내내 많은 여행지의 사진과 메일과 엽서들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의 현실로, 나는 나의 현실로 복귀했고 우리의 길은 서로 만날일이 없다.

아직도 그는 연말에 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아직도 그 때를 이야기한다. 그 시간이, 그 곳이, 우리가 얼마나 꿈결같았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되새긴다.

He says "we were midsummer night's dreamers, and still I am."

by Alice | 2012/06/09 19:38 | 트랙백 | 덧글(2)

요즈음의 기록

1. 인생의 전환이라고 할만한 일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나는 흥분도 감흥도 고뇌도 없다. 내 뇌의 어딘가 고장나서 이젠 더 이상 무언가를 가슴뛰게 느끼거나, 무엇을 깊이 생각할 능력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두렵다. 나는 박제가 되어버렸다.

2. 나는 재능이 있다. 남들이 한 쿼터를 매달린 페이퍼를 제출 전날 2시간에 걸쳐 써놓고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석사때 지도교수님 말씀대로 반짝반짝한다. 하지만  불행하다. 내 공부는 나는 비참하게 만들지만 손을 뗄 수 없는 존재다.

3.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필드에서 신입의 자세로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여전히 속물이고, 나의 개인주의적인, 남과 함께 일하기 싫어하는 성향은 여전하며, 아직도 내가 인정한 소수의 사람 이외의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특히 저 존경심 문제는 사회생활에 큰 문제인데, 나는 타인을 존중, 또는 높이 평가하지만 웬만해서는, 정말 대학자에 인격자가 아니고서는 존경하지 않는다. 고로, 나보다 나이건 직급이건 상위에 있다고 여기는 이가 나에게 존경을 강요하면 강자에게 강한 나는 상대가 가장 아파할 부분을 공개적으로 비틀어서 한방 먹인다.. 아아.. 잘할 수 있을까..

4. 나이 서른에 정장이 없다. 뭐 캐주얼하지 않은 옷은 있지만 면접용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다. 그래서 정장을 샀다. 비싼게 확실히 좋더라. 보헤미안 인생 삼십년에 드디어 하이엔드에 눈을 뜨는건가.

5. 이번 멜로디 가를돗의 앨범은 더운 여름에 얼음을 가득 채운 글라스에 소다와 보드카를 섞어 마시며 들으면 딱일 것 같다. 근데 여기 별로 안덥다. 안더운 게 유감인 건 오랜만이다.

6. 휴가를 가고 싶다. 습하지 않은 더운 지방의 호젓한 리조트에 내 개와, 책과 음악을 싸들고 가서 수영을 하고 잠을 자고 술을 마시고 맛난 음식을 먹고 레게를 들으면서 춤을 추고 낯선 이들과 웃으면서 가볍고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런 환경에서는 나도 성마르고 자존심강한 사람이 아닌 잘웃고 붙임성 좋고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있을 수 있다.

7.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내 작은 개야.

8. 나는 누군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성적으로 압도적인 사람이 나를 컨트롤해주길 원했다. 그것이 내가 원한 평생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가 나를 압도할 수 있겠는가. 나를 압도할만한 인물이라도 나는 압도당하는 인물이 아닌것을..

9. 개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침대옆의 협탁에 위스키를 놓고 홀짝이다 자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먹는 것을 다 먹어보고 싶어하고, 수시로 내 입술을 핥는 개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이제 잠자리의 위스키를 잃었고 위스키라는 이름의 개를 얻었다. 하하

10. 나는 엉망이라 애를 가질 수가 없을 것 같다. 나같이 불안정한 사람이 엄마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난 아직도 아이를 넷이나 다섯 잔뜩 낳아 커다란 시골집에서 키우는 상상을 가끔 한다.



by Alice | 2012/06/09 18:26 | 트랙백

어화둥둥 내 사랑이야

내가 이렇게
 
뭔가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을 줄 누가 알았던가.

by Alice | 2012/05/22 02:41 | 트랙백 | 덧글(4)

기록

1. 얼마전에 페르시안 나이트 행사에 다녀왔다. 친한 친구 중 한명이 이란인인데, 오지랖이 넓은 녀석이라 이란 학생회장같은 걸 하고 있어서 가줘야 했다. 이란 시 낭송, 벨리댄스, 전통악기 연주를 보고 왔다. 사실은 거의 중고등학교(어쩌면 더 못한) 장기자랑 수준인데 이란 학생들은 아무도 부끄러워 하지도, 주눅들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신나게 즐기고 있더라. 발표회가 끝나고 이란 음식을 먹었는데 맛나!! 치킨도 맛나고 난도 맛나고 특히 나 콩넣은 커리 너무 좋아!!

2. 저 이란인 친구가 얼마전에 하와이의 학회에 다녀왔는데, 무슨 저주받은 돌이 있다 그래서 기념품으로 갖다달랬더니 가져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슨 유명한 화산이 있는데, 거기서 돌을 주워오면 화산의 여신이 자기의 일부분을 가져간다고 저주를 내린단다. 자기가 그 돌을 주웠더니 현지인이 기겁을 하고 얼른 버리라고 했단다. 응? 진짜? 그래서 내가 저주받는게 너냐 나냐 물어봤더니 자긴데 자기는 하나뿐인 신(알라! 무슬람임)을 믿기 때문에 괜찮단다.

3. 우리집 강아지는 카발리에 킹 찰스 스페니얼이다. 코카 스패니얼이 몇대 지랄견 중 하나라는데 얘도 스패니얼이라 그런지 지랄견의 기운이 보인다. 장난꾸러기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얼마 전에 내 생일이 있었는데, 1층에서 파티를 하고, 2층에 개를 올려다 놨다. 얘는 무서워서 계단을 못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안껴주니까 두려움을 극복하고 1층으로 뛰어내려왔다. 그렇게 단번에 계단 내려오기를 마스터하신 이후로는 1층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밥먹을 때마다 옆에서 낑낑거리고, 냉장고 열때마다 귀신같이 온다. 그래도 내가 1층 소파에 앉아있을 때 계단 난간 사이로 목을 내밀고 나를 내려다보는 게 귀여워.

4. 국제구호기구에 한 군데 더 원서를 냈다. 조금 더 체계적이고 규모가 있는 곳으로. 그러나 나는 고령이라 합격여부는 글쎄.. 게다가 기업들은 쓸데없는 고학력은 싫어한다는데, NGO는 좀 다를려나..

5. 이곳의 날씨는 천국이다. 한국에서 가장 나들이하기 좋은 청명하고, 시원하고, 습하지않고 그런 날씨를 상상해보라. 여기는 일년중 300일 이상이 그런 날씨이다. 반대급부는 한달 150만원의 집세.

6. 오늘 교수님이 내 수업 참관하러 들어왔다. 세학기만에 나는 능구렁이가 되어서 긴장하지도 떨지도 않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수업을 리드한다. 사람은 어떻게든 다 살기 마련인가봐요.

7. 배고파. 오피스메이트랑 같이 있는데 계속 꼬르륵거린다. 아구 부끄러워라.

8. 생일. 똑같다. 스무명도 넘는 사람이 왔고, 고기를 구웠고, 서빙하기 바빴고, 생일주먹고 죽었다. 나는 딱히 외향적인 사람이 아닌데 꼭 불러야 할 사람이 서른 가까이 되는가. 어디든 출마나 해야겠다.

9. 막내는 재수끝에 올해 대학에 들어갔는데 새벽에나 집에 온다고 부모님이 화가 잔뜩 나 있다. 여기 오빠들한테 얘기하니까 새내기때 뭐 게임방에서 밤새고, 술먹고 밤새고 새벽에 들어오는건 남자애들한테 일반적인 일이라고 하던데.. 내 기준에선 그게 보통이라도 부모님이 그렇게 싫어하시면 안해야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일단 부모님 집이고, 부모님 돈으로 살고 있으니까, 행동에 제약을 둘 권리도 부모님께 어느정도 있지 않을까?

10. 스승의 날 선물 매년 챙기는 것도 힘들다. 하다 안할 수도 없고. 돈도 꽤 든다.

by Alice | 2012/05/18 03:44 | 트랙백

슬퍼졌다.

내일 아이들과 토론할 자료는 프리모 레비의 The drowned and the saved.. 우리말로 번역하면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쯤 되려나..

홀로코스트의 한복판에 있었던 학자의 에세이인데, 아아 인간성의 끝을 보는 일은 힘들구나.

그 지옥에서 생존한 작가가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도 슬프다.

작가는 생존자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몇가지 설명해놓았다. 자살은 인간의 행위라, 짐승의 상태로 견뎌내야 했던 그들에게는 사치였다고 한다. 게다가 생각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뇌하지 않고 그냥 현실을 견딘다.

그 지옥을 빠져나오고도, 자신만의 지옥에 갇혀 목숨을 끊은 작가..

그는 말한다.

고귀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죽어버렸다고, 견디지 못하고, 또는 저항하다가..

살아남은 자들은 잔인하며 교활하고 무감할 수 있었던 이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지옥에서는..

허허.. 나의 염세주의를 한껏 부추기는 밤이로다.

by Alice | 2012/05/17 16:48 | 트랙백 | 덧글(3)

기록


1. 혼자 지내는 요즘, 요리를 못하기도, 싫어하기도 하는 나의 주식은 샐러드. 육식주의자인 나를 아는 이들은 놀랄거다. 하지만 샐러드래도 모짜렐라 치즈와 달걀(그나마 칼로리를 줄여보겠다고 흰자만 넣는 발버둥), 토마토를 넣어서 드레싱을 듬뿍 뿌린 비건강식(아마도..)

2. 강아지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장난감 천에 피가 배어나오는 걸 보고 기절할 뻔 했으나, 유치가 빠지고 있는 것뿐이라는 육견 유경험자들의 충고로 진정..

3. 슈라멕 비비를 사보려한다. 집안용으로.. 바르고 잘 수 있대서 혹했다. 나도 그 놈의 '화장안하고 쌩얼인 척' 좀 해보고 싶다. 나는 몸이 차서, 집에 들어오면 무조건 뜨거운 물 샤워를 한바탕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으므로, 화장도 같이 지워야되고, 따라서 집에서 화장한채로 있는 일이 없다. 가끔 술마시러 오는 사람들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들리는 사람들에게 진짜 쌩얼 말고 쌩얼'같은' 얼굴을 보여주고파.

4. 퍼그 너무 귀엽다. 퍼그 분양 홈페이지 보는데 보통 1500-2000불해. 우왕.

5. 아프리카에 간다고 생각하니 물욕이 없어진다. 옷이며, 구두며, 악세서리며 가방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지만 에스닉한 롱스커트는 언제나 가지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도 입기 편할텐데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맘에드는 것 몇개 봤는데 가격이 막 사만오천원 이래. 한국 동대문시장과 지하상가가 그립고나.

6. 공부 쉬기로 했는데 머리속에 막 논문거리들이 떠올라. 심지어 아이디어가 꽤 괜찮은 거 같아. 아이고..

7. 나는 지니, 그러니까 램프의 요정이 나타나서 소원 세가지 이야기하라면 말할 것을 벌써 정해놨다. 완벽한 소원들이다. 이제 신이든 요정이든 나타나주기만..

8. 동네에 브런치 가게가 있는데 거기 프렌치 토스트랑 해시 브라운이 예술이다. 하지만 칼로리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참고 있어. ㅠㅠ

9. 수면욕을 빼고는 소멸되었던 나의 모든 욕구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드디어 탈박제인가.

10. 내 주위에 보면 철저한 진보주의자들은 모두 계몽주의자다. 하나도 빠짐없이 엘리트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해는 하지만 타고난 반골인 나는 그런 것이 보일때마다 같은 진보성향을 가진 그들을 비꼬고 비난해댄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가지고 있는 그런 의식을 숨기기 위해 정치얘기, 사회성토 이야기는 안하려 노력한다.

11. 나는 애정이 넘치는 인간이라 여러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 그래본 적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하지만 사회규범에 대한 의식이 그를 막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신실한 연인이었다.

12. 요즘 들어 몇년 전인가 한달 동안 여행동료였던 이가 보고싶다. 사실은 그 사람과 여행했던 그 곳과, 그 시간이 그리운 것일테다. 그 허름하고 추웠던 숙소와, 그 사람의 작은 기타와, 안주도 없었지만 달게 마셨던 술과, 발에 났던 상처들과, 오지않던 버스와, 함께 몸을 녹였던 모닥불과, 트럭의 짐칸과, 더러운 화장실과 벌레들이.. 모든 것이, 좋았던 것도, 그때는 싫었던 것도 다 그립다. 그 사람은 귀국해서 몇차례 메일을 보내 그 시간이 꿈과 같았다고 했지.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보니 그건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어. 잘살고 있나요. 그 말은 아직 유효한가요.

by Alice | 2012/05/02 15:22 | 트랙백 | 덧글(3)

내가 제일 좋아하는 중국어 노래



<동류>

비온 뒤의 도시는 적막하고 어수선하다
길 가의 자리는 누굴 위해 비어있는 것일까
나는 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만 대답이 없네
나처럼 위안이 필요한 이 또 있을까
바람은 멈추었다 또 부는데 나는 문득 누구를 생각하나
하늘은 맑았다 또 어두운데 나는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마음은 뜨거웠다 식고
세상은 때론 너무나 고독해
또 다른 동류가 필요하구나
사랑은 주고 또 받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 그다지 완벽하지 못하니
꿈은 꾸었다 또 깨어지니
우리는 몇번이나 그 꿈을 좇을 기회가 있을까
왜 사랑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 희귀하고 비싼 사랑을
구름은 허공에서 미풍에 흩어지고
추억은 아름다울지라도 사라지고 말지 않은가

by Alice | 2012/05/01 13:41 | 트랙백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진로에 대한 진지한 생각


나는 세미프로학자이다.
왜 이 공부를 하게 됐어요? 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됐네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다.

내가 진로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내 전공을 좋아했고, 대학와서 좋은 스승님을 만났고, 그분밑에서 석사를 했고, 박사때는 왠지 당연하게 유학을 왔다.

그렇다고 내가 내 전공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시점까지는 좋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이것이 직업이 되고부터는 그저 당연스런 의무감에 공부를 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가 과연 이 공부를 하면서 평생을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있다.

지적허영심으로 버텨내기에는 이 공부는 외롭고 괴롭다.
좋아서 하는 공부가 아닌데, 벌이도 시원치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재.미.없.다.
전.혀.

나는 평생 하고싶은 일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내 명예욕과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공부를 해서 학자와 교수의 타이틀을 얻는 게 그 하나요.
구호활동가가 되고싶은 것이 두번째다.

그래서, 지금 이 멍청한 인간은 서른이 된 나이에 과감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자 계획중이다.
내가 구호활동가가 될 용기를 내었어야 될 타이밍에 그를 못했던 것처럼
이번 학기 수료인 내가 박사논문을 쓰게 되면, 소위 교수트랙을 타고 더 이상 다른 것을 하기 힘들다.

나는 그렇게 갇혀서 사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나는 자유로운 사고와 드높은 자존감과 방랑벽으로 사는 인간이었는데
내가 요즘 입버릇처럼 말하듯 나는 박제가 되어버렸다.

내가 다시 돌아와서 몇년 뒤늦은 논문을 쓰고 학계에 안착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후회되지 않도록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해 볼 작정이다.

이상은, 아프리카 아동구호단체에 3년 파견직 지원을 한 오늘의 기록이다.

나는, 지금 기쁘다.

by Alice | 2012/04/30 16:2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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